미술품 전문감정 기구 설립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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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최근 천경자씨의『미인도』가짜 시비 사건과 관련, 미술계에서 전분 감정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국립 현대미술관도 지난 l2일「국립 감정원」과 같은 권위 있는 감정기구의 실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미술관은 또 중성자 방사화 분석기 등 최첨단 분석기구의 도입도 계획하고 있다.
문학부도 이에 관한 세미나 등을 열어 미술품 감정에 대한 대책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처럼 전문감정 기구의 설립이 요청되고 있는 것은 이번『미인도』시비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국내에 미술품의 진위를 확실히 가릴 만한 전문 감정기구나 감정인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해외미술품 수입이 완전 개방됨에 따라 외국 작가의 작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나 이에 대해선 속수무책일 따름이다.
국내 미술품에 대해선 한국 화랑협회에 감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작품을 감정하고 감정서까지 발행하고 있으나 아무런 법적 뒷받침을 갖추지 못한「자문기구」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이 위원회를 둔 한국화랑 협회마저 아직까지 사단법인체 인가도 받지 못한 채 50여 개 상업화방 대표들이 모여 구성한 임의단체다.
지난 82년3월 설치된 감정위원회는 한국화·서양화 2분과로 나뉘어 각각 7∼8명의 미술평론가·작가·화랑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같은 한계 때문에 감정위원회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의뢰한『미인도』의 감정결과를 공식 발표하면서『이 작품을 진품으로「의견」이 모아졌으며 작가는 위작임을 주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우리의 감정결론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확증 적인 위작혐의가 밝혀지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덧붙였다.
이는 곧 그동안「권위 있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져 온 감정위원회의 감정결과도 결국은 「전문가들의 소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셈이다.
이번 감정위원의 구성은 평론가 1명·한국화가 2명·화랑대표 4명으로 이뤄졌다. 결국 이들은「인목」과「경험」을 통해『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국립 현대미술관의「진품판명」발표도 감정위원회의 판정과 공신력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미술관은 안목과 경험 외에 현미경 촬영에 의한 안료 분석이라는「과학적 감정」까지 동원,『「미인도」에 사용된 안료는 천경자씨의 다른 작품에 사용된 것과 일치한다』고 설명했으나『다만 이러한 안료는 다른 작가도 사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이 미술관도 진품 발표를 하면서『만약 위작으로 판명될 경우 이와 관련한 어떤 책임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미인도』사건이 법정으로 비화할 경우 두 기관의 공식발표는 법적 구속력을 얻기 어려우며 오히려 작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공산도 크다
외국의 경우는 작가의 주장이 우선하고 있으나 시대별·작가별로 전문 감정사가 있어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제적 경매회사인 소더비는 주요국가별·종목별로 무려 2백여명의 전문 감정사를 두고 경매 작품의 진위를 판정,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화를 감정해 온 노승전씨(송원화랑 대표)는『우리도 하루빨리 전문 감정사를 양성하고 이를「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로 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성 국립 현대 미술관장은『외국의 최첨단 분석기를 도입해 이를 문화재 관리국이나 박물관 등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히고『그러나 이같은 과학적 분석자료를 이용 할 수 있는 전문 감정기구의 실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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