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한­일 나들이/현안 많지만 경협에 중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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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소회담/한국 유엔가입에 지원기대/「대좌」짧지만 남북대화·핵등 골고루 짚을것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19일 방한을 준비하느라 청와대와 외무부는 일요일인 14일에도 부산한 움직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일정과 장소,의제등이 빨리 마무리되지 않아 일본을 향해 출발하는 15일까지 공노명 대사가 접촉을 계속하며 협의된 내용을 타전해왔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도착시간은 우리측의 계속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초안대로 오후 6시30분으로 결정됐다.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계속 공항부근의 그랜드호텔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문단지의 호텔신라로 방침을 정하고 준비에 착수.
그랜드호텔은 1천명이 훨씬 넘는 양국관계자와 세계각국에서 몰려드는 보도진을 수용할 수 없을뿐 아니라 충분한 통신시설을 확보하기에도 어렵다는 것이 의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호텔신라의 시설이 세계 어느 호텔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데다,부근 경관이 뛰어나다는 점도 감안됐다는 후문이다.
양국간에 아직 합의되지 않은 또 한가지는 한시간의 단독회담과 15분간에 걸친 확대회담이후 기자회견 여부.
우리측은 이 회견에서 우리의 유엔가입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공식적인 언급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소련은 공동발표는 어떤 형식이든 피하려 한다는 것.
이에 따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공항도착후 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진뒤 노태우 대통령과 차량을 동승하고 차중회담을 30분간 갖게 돼있고 회담장에서 공항으로 이동할때도 차중회담을 계속해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는 계획.
이 때문에 「국빈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인데도 대통령이 직접 공항 환영행사에 참석하게 됐는데,외무부당국자는 『형식을 너무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민주화과정의 진통을 겪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공감대가 있다』며 『이때문에 양국정상의 친교에 큰 비중을 두고 회담일정을 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련측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전용승용차를 가져오기로해 차중회담의 성사여부는 아직 불확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도착하면 한시간동안 노대통령과 단독회담을 갖고,이 시간동안 외무장관회담과 경제장관회담 및 영부인회담도 병행한다.
○…청와대 및 외무부의 의전·경호관계자들은 이러한 방한일정을 기준으로 13,14일 이틀동안 제주공항에서 호텔신라까지의 경로에 대해 1차 현장답사를 완료했다.
또 제주도도 주변도로의 차선표시,미화작업등 대대적인 환경정비를 했고,의전담당자들은 회담장,프레스센터등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
외무부는 이러한 일정,장소,논의내용등에 대한 실무검토안을 마련해 14일 저녁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보고,청와대의 검토후 15일 오후 발표할 예정이다.
이같은 준비과정에서 우리는 짧은 준비기간을 고려해 소련당국과의 접촉이 쉬운 주소대사관을 주로 이용해왔다.
따라서 14일 귀국예정이던 공대사의 귀국일정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모스크바로 떠나는 시간까지 체류케해 15일 오전에 귀국케 했다.
또 주한 소련대사관과의 접촉도 별도로해 13일 오전 소콜로프대사가 외무부로 들어와 마무리 입장을 교환했다.
○…노­고르비회담은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위배석자 1명과 통역 1명만을 배석시키는 단독회담으로 진행될 예정.
회담은 먼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결과를 설명하면서 동북아 안보협의회 구상을 다시 전달하면서 한반도문제 및 한소관계로 이어나갈 예정이다.
특히 양국정상은 한반문제는 남북양국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을 것이고 이어 노대통령은 이를위한 남북고위급회담 재개 및 유엔 선가입의 필요성 등을 역설하며 이에 대한 명시적 입장표명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는 것.
또 노대통령은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과 소련의 대북한 무기수출 자제등을 요구하고,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및 비핵지대화 문제등을 다시 표명하게될 것으로 전망.
한소양국은 상호주의원칙에 의거해 양국간의 접촉을 늘려나가기로 하고 있으므로 작년말 노태우 대통령 일행의 모스크바 방문시 비용일체를 소련측이 부담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소련측의 제반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4시간여의 방문이 되므로 훨씬 가볍게 된 것.
한 고위소식통은 『국내외의 여러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불과 몇시간방문 운운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폄하하는 것은 맞지도 않다』며 『짧은시간이지만 꼭 할 것은 다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없다』고 강조.
○…한편 정상회담후 가질 만찬모임에는 양국정상과 수행원 및 관계자등 1백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중 우리측에는 노대통령과 제주지사외에 통일원부총리·외무·상공·농수산·과기처장관과 청와대관계 수석들이 수행원으로 참석한다.
또 제주도를 관광지로서 부각시키기 위해 관광개발협회장등 지역유지도 참석시킬 계획이다.<김진국기자>
◎일­소의제/북방 4개섬 반환 공방예상/일 구체적 성의요구에 소선 정경분리 주장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이 14일 역대 소련지도자중 처음으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기 위한 역사적인 장도에 나섰다.
14일 오후 모스크바를 출발한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행은 15일 하바로프스크에 도착,2차대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됐다 사망한 일본인 묘지에 헌화함으로써 미결로 남아있던 일본 소련간의 전후처리 문제에 상징적인 매듭을 짓는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의 부푼 기대속에 16일부터 3박4일간 일본을 방문하게 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들고올 가방속내용이 뭘까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낙관적 관측보다 비관적 관측이 더 지배적인게 이곳 동경현지의 분위기다.
일본국민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이 결정된 1년전부터 오랜숙원인 북방 4개섬 반환에 열을 올려왔었다. 특히 금년들어 나카야마(중산태랑) 외상과 오자와(소택일랑) 자민당 전 간사장은 잇따라 소련을 방문,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소련지도부가 영토문제 인정」「2단계 반환론」등 금방이라도 영토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발언함으로써 국민들의 기대를 부풀려왔었다.
그러나 지난 13일부터 몰려오기 시작한 10여명의 소대통령 측근 브레인·관료 등 선발대들은 이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일본언론의 논조가 『이번에도 별로 기대할게 없으며 그렇다면 대서 경제협력에도 신중을 기하자』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있다.
마르티노프 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사르키소프 동양학연구소 일본문제센터 소장,볼스키 과학산업동맹회장,이그나텐코 대통령 대변인등 선발대는 돌아가면서 각 신문·방송들과 인터뷰를 자청,영토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기본입장을 설명하고 일본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12일 외신기자클럽회견에서 초점인 북방 4개섬문제와 관련,『대통령과 가이후(해부준수) 총리와의 정상회담 최종일(18)에나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해 영토문제에 소련측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않다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사르키소프 소장은 평화조약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있는 북방영토문제에 구체적언급을 피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1개월이 아니라 1년,10년도 걸릴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 이 자리에 참석한 일본기자들을 실망시켰다.
네차례로 예정된 고르바초프­가이후(해부)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의제는 크게 ▲북방 4섬문제 및 평화조약체결문제 ▲쌍무적 실무문제 ▲국제정세 ▲최고수뇌간의 직접대화계속 등으로 나뉜다.
일본측으로서는 북방 영토문제를 최소한 18일 발표예정인 공동성명에 명기,그내용도 하보마이(치무),시코탄(색단) 두섬의 반환을 약속한 56년의 일소공동선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나시리(국후),에토로후(택착) 등 두개섬에 대해서도 계속 토의한다는 선까지 밀어본다는 속셈으로 임하고 있다.
일본방문을 통해 고르바초프가 내놓은 대일카드로는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대충 네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외무성 소식통은 내다보고 있다.
첫째 카드는 일본인 시베리아억류자에 대한 유감표명이다.
둘째 카드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아시아­태평양판 이라고 할만한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CSCA)의 제창이다.
이 새구상은 그의 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연설,88년 9월 크라스노야로스연설에 이어 소련의 동방진출전략을 내보이는 것으로 이지역 전관계국 참가에 의한 집단안보체제의 확립이 목적이다.
새구상은 특히 남북한통일이 현실적 과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반도의 통일가능성을 상정한 아시아­태평양지역구도의 모색』이라는 내용도 포함할 것으로 전해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남북한·미국·일본·중국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카드는 북방 4개섬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1개사단)의 삭감이다. 특히 군사적가치가 적은 것으로 분석되는 치무·색단 두섬에서 모든 소련군이 철수한다는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통은 점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이지역 군축을 유도하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미국측이 아시아­태평양집단 안보구상과 함께 경계하고 있는 대목이다.
최후의 카드가 북방 영토문제다. 일본측은 ▲56년 일소공동선언의 재확인 ▲56년 공동선언을 재확인한 위에 국후·택착 두섬에 대한 계속협의 ▲북방 4개섬 전부에 대한 일본측 주권인정등 낙관적 관측을 하기도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측의 일방적 바람이다.
고르바초프가 내놓을 카드는 「영토문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원칙론에 머무를 공산이 크기때문이다. 이경우 공동선언을 작성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실무자들간에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는 관측통도 있다.
이처럼 회담이 난항할 경우에 대비,일본외무성 당국은 일찍부터 가이후총리가 8월중에 방송할 뜻을 굳히고 있다는 설을 일부신문을 통해 흘려 영토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번방소때 최종담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배수의 진을 펴고있다.
소련측으로서는 골치아픈 영토문제를 내세워 경제협력에 뜸을 들이고있는 일본에 대해 이번 소일정상회담에서도 「정경분리」를 계속주장,5억달러 긴급차관요청등 얼마간의 「급전」이라도 융통해 보려는 종래의 태도를 고수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 고르바초프 방문이후 가이후의 처신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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