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돼지 키워 100억 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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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양로씨가 어미 돼지 옆에서 새끼 돼지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무일푼에서 돼지를 키운 지 10년 만에 100억원의 자산을 일군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동리 '그린 팜스'의 이양로(46)씨가 돼지 해를 맞은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직원 10명과 함께 3000여 평의 돈사에서 7600여 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있다. 보통 돼지가 아니라 종돈(씨돼지)들이다. 새끼만 계속 낳는 모돈(어미 돼지), 인공수정을 위한 정액 채취용 웅돈(雄豚.수컷) 등을 사육해 일반 양돈 농가 등에 공급하고 있다.

이씨의 종돈은 품성이 우수한 것으로 소문나면서 전국에서 분양 신청이 몰려 월 350여 마리를 공급하고 있다. 분양 가격은 보통 마리당 100만원이고 공인능력검정소로부터 '수퍼 돈(豚)'으로 인정받은 것은 500만~60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씨는 "연 40억원가량의 매출에 2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다"며 "부지 1만5000여 평의 농장 자산 규모는 1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1990년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그는 농협에서 근무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돼지 육종 농장'을 꿈꾸며 94년 말 퇴직했다.

1년 동안 양돈 농장들을 돌며 돼지에 대해 공부한 뒤 97년 7000여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100평짜리 돈사 3개를 지어 30마리로 출발했다. 돼지를 기른 지 2년 만에 누전으로 불이 나 400여 마리 중 200여 마리를 잃는 시련도 겪었다.

이씨는 "돼지도 주인이 얼마나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줄 안다"며 "돼지 우리에서 함께 살다시피 할 정도로 돌봤다"고 했다. 부인 김영림(39)씨도 농협에 근무하면서 생활비를 대고, 주말과 휴일이면 농장에 와 남편 일을 도왔다.

모돈의 경우 새끼를 많이 낳고 젖을 잘 먹이며 체장이 길고 발과 발톱이 튼튼해야 우량 종돈으로 친다.

그는 미국.캐나다 등에 가서 우수한 원원종(할아버지대 종돈)들을 수입, 교잡 육종 뒤 F1(1세대)들에게 나타난 형질 등을 보고 우수 개체를 가려내 대량으로 번식시켰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계속 유전과 육종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또 매월 공인 종돈능력검정소에 출품해 품질을 공개 검정받았다.

이씨는 "종돈 사업은 자금이 많이 들고 유전과 육종에 관한 전문지식이 필요해 일반 농가가 쉽게 뛰어들기 어렵다"며 "틈새 시장을 잘 파고든 것 같다"고 성공 비결을 소개했다.

국내 종돈장은 200여 곳. 이씨의 농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20여 곳 중 가장 크며 전국 종돈 시장의 5%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

돼지 해에 이씨가 다시 돼지에 거는 꿈은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것. 이를 위해 전국 4~5곳에 넷 팜(Net Farm.체인 종돈장)을 개설, 해당 권역에 종돈 공급을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돼지는 장거리 이동할 경우 경비는 물론 스트레스로 인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올해는 성(城)처럼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돼 각종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균(無菌) 농장을 짓겠다"고 말했다.

해남=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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