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살인마」쫓는 화성경찰서장 윤한성총경(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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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끈질긴 수사로 범인 꼭 잡겠다”/“과학장비·전문인력 모자라 큰 어려움/국민들에게 준 충격 너무 커 정말 죄송”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여파로 직위해제된 전 서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1월 경기도 화성경찰서장이 된 윤한성 총경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부임후 4개월동안 집에 한번 못들어가고 화성사건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밤낮없이 뛰었지만 결과는 악몽같은 사건의 재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열번째 화성사건이 터지자 즉시 현장에 출동한 윤서장은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려 두다리가 후들거리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고 한다.
열번째 사건으로 잠은 물론 제대로 식사도 못해 입술이 부르트고 초췌한 얼굴이된 그는 여러번의 인터뷰요청에 『범인도 못잡은 상황에서 무슨 체면으로 얼굴을 내느냐』며 막무가내다가 경찰입장을 밝히고 협조요청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는 설득에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아홉번째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전에 사건이 또 발생했는데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십니까.
▲먼저 국민에게 충격을준 사건이 다시 발생한데 대해 지역치안의 책임자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성폭행후 살해됐다는 점에서 동일범죄라고 볼 수도 있으나 수법상의 차이가 발견되는 몇건은 「모방범죄」 가능성도 있습니다.
9차까지의 사건피해자들은 모두 손발이 묶여 있었으나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은 점으로 미뤄 동일범에 의한 범행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동일범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부녀자살해사건이 화성에서 계속 일어나게된 것은 어떻게 풀이 할 수 있을까요.
▲인구 24만명의 화성군은 농촌지역이면서도 점차 도시화되어 가는 반농반도적 지역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이 넓어 범죄 취약성을 안고 있습니다. 또 6백여개의 중소기업들이 태안읍을 중심으로 농촌지역에 흩어져있고 대부분의 종업원이 수원·오산 등지로부터 출·퇴근하는등 유동인구가 많아 여행성 범죄율도 높습니다.
특히 화성은 8백여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대개 버스길에서 5백∼8백m 떨어진 야산중턱에 들어앉아 범죄가 발생할 경우 목격자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범인은 이런 점을 잘 알고있는듯 합니다.
­경찰이 그동안 엄청난 수사력을 투입했으나 물량수사에만 치우쳤기 때문에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동안 화성경찰서뿐 아니라 경기도경·서울시경·인천시경으로부터 강력사건 전문형사까지 지원받는등 많은 수사력을 동원했으나 물량수사니,주먹구구식 수사니 하며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수사를 게을리한 것은 아닙니다.
국내 최초로 「중성자방사화분석」「레이저광선 이용 지문감식」「DNA지문감식」등 첨단과학 수사기법을 활용했으나 사건자체가 완전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사건현장에 단 하나의 결정적 단서도 남아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입니다.
­범인이 여러명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주민들사이에 나돌고 있는데 경찰은 어떻게 보십니까.
▲모든 사건이 그렇듯이 해결되기 전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범행수법으로 분류해 볼때 3∼4명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수사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사대상이 화성지역 우범자·동일수법전과자·독신자 등으로 한정돼 왔으나 일부 범죄심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은 화이트칼러에 의한 범죄가능성과 범인 주거지가 화성이 아니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범자등이 수사 1차대상에 오른 것은 당연하며 지금까지 수사대상을 한정시킨적은 없습니다.
그동안 용의선상에 오른사람에 대해서는 연령·사회적 신분등을 고려치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조사를 벌여왔습니다.
수사대상지역도 화성지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수원·오산·안양 등에도 형사를 보내거나 해당지역 경찰과 공조해 왔습니다.
­「얼굴없는 범인」이라고 표현될만큼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있는데 경찰수사에 비친 범인의 인상착의와 성격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목격자가 전혀 없어 인상착의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범인의 성격은 내성적이면서도 포악하며 성적 열등감에 의한 변태성욕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완전범죄에 가까운 범죄행각으로 미루어봐서는 범인은 치밀하고 냉정한 성격에 고학력자일 수 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학수사를 위한 경찰장비와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있지는 않습니까.
▲과학수사장비와 전문인력의 부족은 비단 화성사건 수사에만 적용되는 문제라고는 보지않고 우리경찰 모두가 안고있는 고충이지만 수사단서가 없어 애를먹는 화성사건의 경우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자지문감식기라고 일컬어지는 DNA지문감식기는 아직 우리나라에 없으며 미국·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DNA지문감식기뿐만 아니라 고도의 과학수사장비를 갖추고 있어 지능화된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나 현재 우리경찰의 여건은 그렇지 못하며 화성사건같은 경우는 좀더 과학적 수사장비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찰내부에서는 화성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에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언론의 질책이 자성의계기를 마련해준 공도 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경찰의 사소한 시행착오까지 들춰내는 것은 사기를 극도로 저하시키는등 부작용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언론사간의 과다한 보도경쟁으로 수사혼선을 겪은적도 있으며 수사요원 상당수가 사건수사보다는 언론보도 진상파악에 시간을 뺏기는등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사건도 미궁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적지않은데 범인검거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장담할수는 없으나 현재와 같이 끈질기게 수사를 하면 시일은 좀 걸리더라도 범인은 꼭 잡힐 것입니다. 화성사건은 일반 여느 사건과는 달리 범인의 유류품등 물적증거가 전혀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단시간 수사로는 설령 범인을 검거해도 공소유지가 어려운 독특한 사건입니다.
화성에서 30여년간의 경찰생활을 마감한다는 각오로 수사를 하고 있으며 화성사건에 동원된 형사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어서 그동안 축적된 수사자료를 토대로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결정적 수사단서가 포착될 것이고 더불어 화성사건으로 인한 더이상의 피해자는 없을 것입니다.<화성=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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