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의영화만담] '미녀는 …' 왜 코만 다시 성형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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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수술했을 겁니다.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실제로 미용 성형 수술의 역사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니 제 공상이 마냥 허황된 것도 아니네요.

뚱녀 한나(김아중)가 전신 성형 수술을 마치고 붕대를 푸는 날, 얼굴을 확인한 의사는 이렇게 말하죠. "코만 다시 하자, 코만." 그리고 황급히 붕대를 다시 감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부위라면 몰라도 코는 특별히 공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책 '성형 수술의 문화사'(이소출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코라는 신체 부위에서 우리는 미용 성형 수술의 기초적 역사뿐 아니라 그 근본적인 동기 부여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다."

'코에서 읽을 수 있는 미용 성형 수술의 기초적 역사'라면 성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16세기 말엽을 말하는 겁니다. 당시 매독이 크게 유행했는데 매독균은 하필 코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다는군요. 게다가 범죄자의 코를 자르는 형벌도 그 시절에 만연했다니 이래저래 '큰 코 다친' 사람이 늘어났고, 그때부터 '낮은 코' 에 대한 심리적 저항과 문화적 편견이 생겼다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빨래집게로 코를 집는 대목이 있죠. 소설 속 구절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몰려와서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도 귀족의 코뼈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보세요. 코가 높아야 귀족이라는 이상한 통념을 마구 드러내지 않습니까.

높은 콧날은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코는 영혼의 상태를 보여준다. '너무 낮은 코'는 불행한 영혼을 가졌다는 표시다"(같은 책)고까지 했겠습니까. 그것이 곧 '코에서 읽을 수 있는 미용 성형 수술의 근본적인 동기부여'인 셈이죠.

후각이 밥 먹여주는 동물도 아니면서 유난히 돌출된 인간의 코는 진화론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매우 드문 예랍니다. 용불용설의 치명적 패러독스죠. 다른 동물들과 대체로 비슷하게 생긴 눈, 귀, 입과 달리 유독 그 모양새가 남다른 코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괴물을 디자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람의 코를 없애는 겁니다. 많은 비주얼아티스트들은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나 유전자 변형 괴물에게서 제일 먼저 코를 앗아갔죠.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인간에게 가장 이질적인 생명체가 되고 맙니다.

'얼굴의 역사'(작가정신)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유난히 얼굴에 집착하게 만든 원흉으로 '줌렌즈'를 지목합니다. 클로즈업 기법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얼굴은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스펙터클로 자리 잡았고, 스크린 속 선남선녀들의 신격화된 얼굴에 압도당한 사람들이 왜곡된 미적 기준에 호도된다는 겁니다. 하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던가요? 잉그리드 버그먼이 "키스할 때 코는 어떻게 하나요?"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더랬죠. 뭘 어떻게 해야 할 만큼 높은 콧대를 갖고 있지 않은 동양인에겐 참 이국적인 대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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