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민주화 “일단 멈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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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야당 선전 불구 노동당이 우세/경제개혁 추진싸고 공방 예상
알바니아의 야당집권과 공산탄압 탈피의 희망이 일단 좌절됐다. 지난달 31일 사상 최초로 실시된 다당제 자유총선에서 야당 민주당은 공산주의 집권 노동당에 대한 정권도전에 실패했음을 자인했다.
동유럽 최후의 순수사회주의(스탈린주의) 국가였던 알바니아가 민주화로 나가는 디딤돌이 될 이번 선거는 국민의 큰 기대속에 실시,97%라는 놀라운 투표율을 기록했다.
알바니아는 지난해 12월 야당설립을 허용,이번 선거에 참여한 민주당을 비롯한 5개 야당들은 창당 후 불과 4개월만에 선거채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이번 총선에 임했다.
그럼에도 불구,야당 특히 민주당은 주로 도시지역에서 선전했다. 수도 티라나에선 전체 29개 선거구중 최소 17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그들 표현대로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특기할만한 것은 수도 티라나에서 정치 신인인 민주당의 프랑코 크로키 후보가 국가원수인 라미즈 알리아 인민의회 간부회의장을 물리쳐 노동당에 엄청난 타격을 가한 사실이다.
물론 의원선거에서의 패배가 알리아 의장의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입을 개인적 타격은 상당히 크다.
현재 의회에 제출된 신헌법 초안에 따르면 국가원수가 반드시 의원직을 가질 필요는 없도록 돼있다. 따라서 알리아는 의원선거에서 비록 패배했어도 노동당지배의 의회에서 국가원수로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신헌법 초안이 의회를 통과하려면 전체의석의 3분의 2 지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만약 노동당이 3분의 2 의석확보에 실패하면 국가원수직 유지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1일 중간집계결과 노동당은 전체 2백50석중 56%인 1백40석을 확보하고 민주당은 70석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나머지는 군소야당 차지 또는 오는 7일 2차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돼있다.
따라서 노동당이 3분의 2 의석확보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알리아 의장외에도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거물들이 낙선함으로써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무하메트 카플라니 외무장관이 낙선했으며 파토스 나노 총리는 과반수 득표에 실패,2차투표를 치르게 됐다.
이번 선거는 지역적으로 야당이 도시지역을 거의 장악한 반면 여당은 지방을 석권,전형적인 여촌야도 현상을 보여줬다.
알바니아는 전체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로,전체인구 3백20만명중 약 7할이 농촌지역에 살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지식인·학생·청년층 등 도시민이 세력기반인 반면,집권노동당은 보수적인 고령자·농민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이같은 도시·지방간의 정치적 양극화현상은 앞으로 알바니아 정정에 큰 불안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당은 비록 정권유지에는 성공했으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우선 민주화개혁을 가속화,야당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공격을 막아내야 하며 대외개방을 계속 추진,그동안 단절돼왔던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문제다. 알바니아의 경제현실은 46년동안의 공산통치 결과 「거의 파탄상태」에 이르렀으며,식량부족과 실업 등 참담한 경제현실에 좌절한 주민들은 기회만 있으면 국외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당은 최근 들어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결정하고 서방자본 도입을 선언했으나 경제개혁이 서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완만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전면적인 기업 민영화와 토지 개혁 등 충격요법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경제개혁 추진을 놓고 양당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노동당정권이 경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때 불가리아의 경우처럼 사회주의정권이 선거에 이기고도 후에 정권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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