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샹젤리제 "살인적 임대료" … 고급 옷가게만 즐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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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싼 임대료 때문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UGC 노르망디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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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불리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유명 의류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로 인해 샹젤리제의 명물이었던 추억의 영화관과 카페들은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고 있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파리지엥들이 샹젤리제에서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던 낭만은 이제 과거사가 돼버렸다.

23일 르몽드에 따르면, 10년 전부터 폭등한 파리의 임대료는 '낭만을 샹젤리제에서'를 퇴출시키고 있다. 그 대신 샹젤리제에 들어선 의류 매장은 ㎡당 한 해 최고 1만 유로에 달하는 살인적인 임대료를 지불하며 영업하고 있다.

샹젤리제의 명물이었던 영화관 UGC 트리옹프는 최근 내년도 임대료를 통보받고 샹젤리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 영화관의 위그 보르지아 사장은 "건물주 리요네 부동산회사(SFL)가 제시한 임대료는 우리 영화관의 1년치 매출액과 비슷했다"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떠나는 게 아니라 쫓겨나는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리도 카바레와 입구를 함께 쓰는 UGC 노르망디 극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매출액이 400만 유로인 이 극장의 임대료는 현재 200만 유로나 된다. UGC 노르망디도 조만간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파리시청 입장에서 보면 UGC 영화관의 이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급 부티크와 대중적인 상점들, 그리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들이 어울려 있던 샹젤리제 거리의 균형이 깨지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시 상업담당 부시장인 린 코엔 솔날은 "1985년 13개였던 영화관이 지금은 7개로 줄었다"며 "이 추세대로라면 샹젤리제 거리가 매력도 없고 보통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거리로 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페 '르 도빌'의 주인인 파트리스 조지앙도 "만약 영화관들이 계속 문을 닫는다면 우리 식당도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레스토랑과 다른 매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00번지 제네랄리 보험사 소유의 건물 1층에서 영업해 온 '레 카스카드' 레스토랑도 샹젤리제를 떠난다. 이곳에는 내년부터 ㎡당 9100유로의 임대료로 최근 계약한 고급 의류점 에스프리가 들어온다.

파리시청에 따르면,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332개의 상점 중 고급 의류 매장은 39%나 된다. 코엔 솔날 파리 부시장은 "옷가게 숫자가 이미 최대치에 육박했다. 조금만 더 늘어난다면, 샹젤리제의 다양성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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