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도 '패션'을 알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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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선추가 달린 부채

남자들이 색조화장을 하고 귀걸이를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조선시대 사대부가 장신구를 즐겨 사용했다면 뜻밖의 일처럼 들린다. 그렇다. 지금처럼 요란하진 않았지만 사대부들도 의관(衣冠)에 매우 신경을 썼다.

예컨대 상투를 튼 후에는 여러 개의 모자를 썼다. 상투 위에 일단 망건(網巾)을 둘러 머리카락이 흘러내지 않게 하고, 그 위에 탕건(宕巾.망건의 덮개)을 올린 다음 정자관(程子冠.평상시에 쓰는 관)이나 갓을 썼다. 망건 주변에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다시 집어넣는 데 대모(玳瑁.거북등껍질)로 만든 '살쩍밀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휴대용 해시계 '앙부일영'

선비들의 필수품 가운데 선추(扇錘)가 있다. 부채에 달고 다녔던 작은 장신구다. 시간이나 절기, 방향을 알아내는 휴대용 해시계를 집어넣고 다녔다. 또 시.서.화에 찍었던 인장이나 은은한 향을 집어넣기도 했다. 예술성과 실용성이 겸비된 유물인 셈이다.

옛 선비들의 섬세한 미의식을 감상하는 '우리네 사람들의 멋과 풍류'가 23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던 작은 칼인 장도(粧刀),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號牌) 등 남성 휴대용품이 고루 선보인다. 노리개.가락지.비녀 같은 여성용 장신구도 일부 포함됐다.

전시품은 직장인 신상정(56)씨가 40년 가까이 모아온 것이다. 신씨가 그가 평생 수집한 유물 220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중 300여 점을 엄선했다. 동양의 별자리를 정육면체로 만든 천문도인 '방성도'(房星圖)도 빼놓을 수 없다. 신씨의 것을 포함해 국내에 두 점만 전해지는 귀중한 과학유산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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