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 있을 때 잘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짬만 나면 가족과 보내려 최선을 다합니다." 유별나게 노력한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신뢰가 가질 않는다.
"진짜라니까요. 가끔은, 아주 가끔은 휴일 아침에 잠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니까요." 그나마 최선을 다한다는 게 냉장고를 뒤져 계란 프라이를 하고, 빵을 구워 우유랑 내놓는 수준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한민국 다른 아빠들의 변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일단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박 이사님처럼 가족을 위해 식탁을 꾸밀 생각을 했다면 주방에서의 육체적 어려움은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을 거예요."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겨 묻던 신씨가 슬슬 아빠의 파티 요령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부엌 살림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가 음식을 하려면 손이 덜 가는 메뉴가 좋습니다. 물론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엔 담은 모양도 고려해야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과 아내의 취향을 감안하는 게 중요해요."
신씨가 박 이사 가족의 식성을 파악한 뒤 제안한 메뉴는 게맛살 카나페 → 과일 샐러드 → 주 요리 → 과일 꼬치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
게맛살 카나페는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고, 과일 샐러드는 아이스크림에 담아 아이들을 유혹하기 좋은 메뉴란다. 과일 꼬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대신할 정도로 예쁜 모양이므로 코스를 고집하지 말고 처음부터 올리면 식탁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것. 주 요리를 놓고 고민하는데 갑자기 박 이사가 참치 스테이크를 제안했다.
"참치 캔을 사서 일본 유학 시절에 자주 해먹던 것이라 자신 있습니다. 참치는 영양적으로 뛰어나 아이들에게 좋잖아요. 게다가 입맛 까다로운 우솔이와 '칼질파' 인 집사람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잖아요."
인근 할인점에서 장을 보고 식탁을 차리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아빠가 차린 크리스마스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집안 가득 이야기꽃이 피었다.
글=유지상 기자<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