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BDA 1200만 달러 현대 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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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은행에서 송금된 현대 자금"=마카오의 한 소식통은 1200만 달러가 현대가 보낸 돈이 확실하다는 근거로 BDA 북한 계좌 개설인의 소명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북한의 해외계좌에서 BDA 북한 계좌로 수만 달러의 자금이 여러 차례 입금됐는데 그때마다 계좌 개설인이 입금된 자금에 대해 '현대에서 보낸 자금'이라고 소명했다는 것이다. 마카오 은행들은 해외에서 거액이 송금되면 예금주에게 자금 출처와 용도, 그리고 인출 예정 시점 등을 밝히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 측은 현대 자금이 입금되면 그 돈을 평양으로 송금하거나 제3의 해외은행 계좌로 보내 활동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측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금강산 관광 대가로 4억4243만 달러를 북한이 지정한 해외은행 계좌로 송금했지만 BDA 계좌를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20일 밝혔다. 현대 관계자는 북한은 해외 송금 계좌를 수시로 바꾼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 지정한 해외계좌로 보낸 돈이 BDA로 재송금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정부가 송금한 4억5000만 달러 중 일부가 아닌가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자금은 북한 지도부로 즉각 전달된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 현대 자금의 합법성 여부=정부의 한 소식통은 20일 "BDA 북한 계좌에 입금된 돈을 불법과 합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불법과 합법 자금을 구분하고 정리하기 위해선 양측의 전문가가 만나 회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BDA 계좌 개설인이 현대가 보낸 돈이라고 소명했더라도 송금한 해외은행 계좌를 확인해야 합법성이 밝혀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대가 보낸 자금이 사업 대가가 아니라 다른 목적일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BDA의 고위 간부는 현재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미국 및 북측 관계자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마카오 소식통은 "북한이 마카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현지 은행에 예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따라서 이 자금은 현대 자금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 제재 풀려도 자금 인출까진 시간 걸려=미국이 북한의 합법적 자금에 대한 동결을 해제한다 해도 자금 인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마카오 은행에서 돈을 빼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BDA에 입금된 자금은 계좌 개설인이 직접 와서 인출 목적을 정확히 밝혀야 송금이나 인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좌 개설인으로 추정되는 박자병 전 조광무역 사장은 지난해 평양으로 소환된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계좌 개설인으로 추정되는 함명철 조광무역 간부도 지난해 미국의 BDA 계좌 동결과 관련, 숙청된 것으로 전해져 마카오로 오기 어려운 처지다.

이 때문에 북한은 6자회담 재개 직후 박의 사망 확인서와 함의 위임장을 가진 인사를 중국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로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게 복잡하기 때문에 BDA가 이런 서류를 모두 인정하고 인출을 허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마카오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마카오=최형규 특파원
서울=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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