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책방「백합 사」|「마음의 양식」으로 60여 년 이어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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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백합 사는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한 자그마한 서점의 이름이다. 이 서점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한 마장쯤 가다 다시 강화국민 학교로 접어드는 중로 초입의. 왼 켠에 자리잡고 있다. 안으로 삐쭉이 파고 들어간 열 서너 평 규모의 이 보잘 것 없는 서점이, 그러나 1930년에 문을 연 뒤 갑 년을 넘는 60여 년의 풍상을 겪고도 의연히 대물림으로 업을 지켜 오는 몇 안 되는 지방 노포의 하나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벽한 섬 강화, 소읍에서 2대째 서점을 꾸려 오고 있는 주인 금동수씨(61)는 15일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창립 제44회 기념식 전에서 91년 관련업계출판 유공자의 한사람으로 뽑혀 표창을 받았다.
김씨의 선친인 정순씨가 강화읍내에 서점 백합 사를 차린 것은 일제 식민치하인 1930년. 서점이름은 당시 서울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동생의 문인 친구들이 지어 주었다. 백합 사는 처음 보통학교의 교과서 지정공급소경문방구점으로 문을 열었으나 해방 후 50년대에 들어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하면서부터 점차 현대적인 서점으로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정순씨는 자신이 세워 27년 동안 경영해 오던 서점을 1957년 9월 아들 동수씨에 물려주었다. 당시 중앙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있던 동수씨는『크게 돈벌 생각 말고 고향에서 서점을 맡아 운영해 보라』는 선친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귀향, 제2대 점주가 됐다. 곧 자리를 옮겨 가게의 규모를 키운 뒤 이듬해 결혼까지 마친 동수씨는 그후 서점 일에 매달려 단 한발도 헤어나지 못하는「책방귀신」이 돼 버렸다.
『책방을 물려받은 뒤 30여년 동안 고향을 떠나 더 큰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고 그만큼 유혹도 많았다」는 동수씨는 그러나 이 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서점을 지킨다는 일종의 문화적 사명감이 고집스럽게 자신을「자족하는 한 책방주인」으로 묶어 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은 강화읍내에만 백합 사를 비롯해 책방이 3개나 들어서 있어 혼자 사명감을 떠들어댈 처지는 아니지만 서점이 지역문화와 관련해 단순한 장삿속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다.
백합사의 고객은 주로 학생과 꾸준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인근 직장인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서울·인천 등의 대도시로 향하는 이농대열이 급증하면서 이곳 강화에도 학생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백합 사를 물려받은 50년대 후반에 비해 강화의 학생수가 절반정도는 줄어든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막내 철연이(18)에게 서점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는 진정한 장인정신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옆 가게를 터 대형서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책만 파는 서점이 아닌 책을 보여주는 서점」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2대 서점주인 김동수씨의 꿈이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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