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넘치는 달러로 한국 국채 매입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좌담 참석자 = 류페이창(劉培强) 중국국가개발구협회 회장(차관급), 류루이(劉瑞) 인민대 경제학과 주임교수,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유희문 한양대 중국학부 교수(사회)

이코노미스트 중국은 공사 중이다. 광저우(廣州)에서 만난 한국 중소 업체 사장의 말이다. 거리에서만 공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 경제도 대변신 중이다. 더 이상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길 거부하며 3차 서비스 산업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외자 도입 정책이 바뀌면서 투자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그전 방식대로 중국에 들어갔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 변화의 중심인 베이징에서 12월 8일 한·중(韓·中) 전문가들이 모여 정책의 배경을 살피고 미래를 내다보며 한국 기업의 진출 전략을 모색했다.


유희문 교수 : 중국 경제는 올해도 10%대 성장이 예상된다. 긴축정책을 편 가운데에서도 4년 연속 10%대 성장이다. 물가 상승률도 낮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류루이 교수 : 요즘 중국 경제 상황을 ‘황금의 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2000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9.7%인데 물가상승률은 1.2%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제 상황이 좋은 데는 네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중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 둘째, 시장경제 체제 이후 경제 발전 속도가 더 빨라졌다. 셋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평탄한 규정 이행 과정을 밟고 있다. 넷째,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 조정 능력이 향상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어떨지에 대해선 장담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선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통계보다 경제 상황이 훨씬 좋다.

류루이
중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에는 그 나라 기업이 확실한지와 신용 상태에 대해 현지 중국대사관의 인증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김상열 부회장 : 거시경제가 안정돼 있다지만 위안화 절상 문제나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 등 외환 관리가 중국의 큰 숙제라고 본다.

류루이 : 올해 외환보유액이 1조1000억 달러에 이를 것 같다. 4000억 달러가 적정한데 너무 많아 골칫거리다. 정부가 몇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인데 그중 첫째가 수입을 늘리는 것만으론 안 되니 해외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다. 미국 국채는 물론 한국 국채를 살 가능성도 있다. 둘째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사회보장기금을 확충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부 발행 국채를 사들여 재정 투자를 확대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는 위안화 절상 문제와 관련돼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국민(노인)이 돈을 쓰지 않고 해외 진출 기업이 수익을 올려 쌓은 일본의 외환보유액과 다르다. 중국에선 기업들이 수출해서 달러를 받아오면 이를 정부가 위안화로 매입해준다.

김상열
거시경제가 안정돼 있다고 하지만 위안화 절상 문제나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 등 외환 관리가 중국의 큰 숙제라고 본다.

수출 기업의 달러를 인민폐로 바꿔주는 이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외환보유액을 줄일 수 없다. 아울러 미국 중심 교역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 등 다자간 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거짓 외국자본은 싫다”

유희문 : 그렇다면 가공무역 금지 품목 확대 등 최근 외자 도입 정책의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류루이 : 중국이 빠른 고성장 속 외자 유치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버지니아군도나 홍콩 등 조세 회피지역을 거쳐 외국자본으로 위장해 중국에 재투자되는 자본이다. 실상은 중국 자금인데 외국자본으로 위장해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다시 말해 ‘거짓 외국자본’으로 중국 돈이 국내에 계속 남는 측면은 있지만, 외국자본에 해당하는 혜택을 봄으로써 분배 측면에서 보면 소득 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문제가 있다.

류페이창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유치하면서 군집화를 유도하고 있다. 투자 지역도 그동안의 연안 중심에서 중부·서부 지역과 동부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외자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줄이는 쪽으로 세제를 통합하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 중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에는 그 나라 기업이 확실한지와 신용 상태에 대해 현지 중국대사관의 인증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외국자본 투자의 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도 80% 정도가 제조업인데,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이란 별명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2차산업 중심에서 3차산업으로 산업을 고도화하자는 전략이다.

균형적인 산업 발전을 꾀하기 위해 외국자본도 서비스업 쪽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그런가 하면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중국 내 선도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 언론에선 이를 ‘참소 행위’라고 하는데 중국 고위층이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것도 경제정책을 조정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중서부 쪽에 투자하라”

유희문 : 그렇다면 그동안 외국인 투자 유치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개발구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을 텐데.

류페이창 회장 : 개발구는 1980년대 외자 유치를 목적으로 설립했다. 초기에는 인프라가 열악해 입주 기업들의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법인세를 감면하고, 수입 설비에 관세를 면제하는 등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고속도로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졌다. WTO 가입 이후 불공정 대우를 받는다고 호소하는 중국 기업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점을 반영해 2004년 개발구 정책도 크게 조정했다.

■경제 강국 중국의 모습

①개별국가론 사상 처음 외환보유액 1조 달러 돌파
(2004년 이후 매해 2000억 달러 이상 증가)

②수출액 2004년 일본 추월, 독일·미국 이어 세계 3위 수출대국
(2006년 수출 9500억 달러 추정)

③GDP 2조6000억 달러로 미국·일본·독일 이어 세계 4위
(2003년부터 4년 연속 10%대 성장 기록)

■강화되는 중국 가공무역·원자재 수출 통제

①가공무역 금지 품목 804개 추가(11월 22일 시행)
- 목재 가구, 광물 등 804개 가공무역 사업 신규 허가·허가 연장 금지

②원자재 등 110개 제품 수출관세 최고 15% 부과(11월 1일 시행)
- 희토 금속광물 등 주요 원자재에 5∼15% 수출관세 부과

③수출 1500개 품목 부가세 환급금 조정(9월 15일 시행)
- 철강재 142개 품목에 대한 환급률을 11%에서 8%로 인하 조정

그동안의 공업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쪽으로 유도하면서 외자 유치의 질을 높이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유치하면서 군집(클러스터)화를 유도하고 있다. 투자 지역도 그동안의 연안 중심에서 중부·서부 지역과 동부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또 환경보호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선 진입 문턱을 높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중부·서부 쪽 성(省)이 관리하는 개발구로 가면 크게 환영 받을 것이다.

22년 역사를 지닌 개발구는 지금 구조조정 중이다. 개발구가 원하는 외국자본은 이제 선진적인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다. 외자 도입 기업에 대한 혜택을 점차 줄이는 쪽으로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 이는 WTO 규정을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 중앙정부 차원에서 임가공 무역을 제한하고 세율을 조정하는 쪽으로 조치를 발표해 시행하고 있다.

유희문 : 2004년 6000여 개에 이르렀던 개발구를 1500여 개로 줄인 개발구 정돈 정책의 배경은 무엇인가?

류페이창 : 연해 지역 개발구가 성과를 내자 성 단위로 개발을 경쟁적으로 하는 바람에 난립 양상을 보였다. 일부 지역에선 중앙정부의 외자 유치 정책과 충돌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래서 실태를 조사한 뒤 여덟 차례에 걸친 정돈을 거쳐 줄였다. 토지 자원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중앙정부의 판단도 작용했다. 내년부터 불요불급한 토지 징용도 엄단하기로 했다.

김상열 :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최근의 급격한 정책 변화에 적응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기업들에 숙지시키는 것은 물론 혼란스럽지 않도록 충분한 유예 기간과 경과 조치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런 식으로 개발구를 줄이다 보면 피해를 보는 입주 기업이 생길 것이다.

류페이창 : 부지만 확보해 놓은 채 입주 기업이 없는 경우, 사업 계획만 있고 실행이 되지 않은 경우, 그대로 놓아두면 살아남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였다. 그래서 문제 개발구를 합치거나 축소 개편했다. 그래도 1500개를 남긴 것은 그곳에 들어온 기업을 위한 조치다. 개인적으론 1500개도 많다고 본다. 앞으로 개발구 관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규범화하겠다. 그러려면 입주 기업의 집약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 일부 지역에서 기업들이 애로를 겪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론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유희문 : 중앙정부가 승인한 국가급 개발구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개발구 간에 외자 도입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에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류페이창 : 기본적으로 중국의 외국인 투자 정책은 통일돼 있다. 일부 지방 개발구에서 국가가 정한 세율보다 낮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에 대해선 단속할 계획이다. 최근 정저우(鄭州) 개발구를 다녀왔는데 가공무역이나 물류업을 할 만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더라. 시안(西安)이나 청두(成都) 쪽도 입지가 좋다.

서비스업 투자 우대한다

김상열 : 앞으로 개발구에서 서비스업을 중점 유치하는 데 과거 제조업과 같은 우대정책이 있는가? 중서부 지역으로 투자를 유도하려면 성 단위로 한국에 투자유치단을 보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류페이창 : 토지 이용이나 사무실 건립, 초기 사업경비를 경감해주는 차원에서 혜택을 주는 조치가 마련될 것이다. 2002년 4%였던 서비스업 비중이 최근 유통·물류 등을 중심으로 11% 이상으로 커졌다. 한국 기업들도 중국 내수시장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안다.

김상열 : 대한상의가 중국 내 36개 한국상회와 함께 회원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한·중 교역 규모가 지난해 1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교역과 투자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양국 중앙정부 간 원만한 통상 관계는 물론 한국 지자체와 중국 지방정부 간 협조 체제 구축도 중요하다.

중국 한국상회 회장들의 진단

“독특한 노하우나 기술 없으면 못 견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모임인 중국한국상회(사무국은 대한상의 베이징사무소, 회원 4500여 개 기업)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총회를 열어 중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36개 한국상회 회장단은 중국이 더 이상 만만한 시장은 아니지만 대응하기 나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도학노 롄윈강(連云港) 한국상회 회장=최근 폐기물·대기오염 배출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 2008 올림픽을 앞두고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신규 진출 업체들이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와선 곤란하다.

▶이희영 웨이하이(威海) 한국상회 회장=현실적으로 중국에서 계속 사업하고 싶으면 이익을 내고 중국 정책도 따라야 한다.

▶이수향 칭다오(靑島) 한국상회 회장=전에는 없던 관세가 생기고 증치세(한국의 부가가치세) 환급도 안 돼 경영에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일은 아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잘 대비하면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고희정 이우(義烏)한국상회 회장=한국에서 양말을 편직해 무관세로 들여왔는데 11·22 가공무역 금지 조치로 수입이 막혔다. 이제 한국산이 아닌 중국산으로 팔아야 하므로 가격이 떨어지게 생겼다. 외상투자관리법에 따라 외국인이 50만~100만 위안의 적은 자본으로 도소매업을 할 수 있다. 잘 활용하면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호연 톈진(天津) 한국상회 회장=한국계 은행 자금을 신용으로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길 바란다.

▶오수종 중국한국상회 회장=중국에서 가공무역을 하는 모든 외국기업이 11·22 조치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제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은 독특한 노하우나 기술이 없으면 사업하기 힘들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오름세에 충격을 받은 중국 정부는 원자재 분야에 규제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정책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여건은 어려워지고 있지만 다른 외국 기업도 함께 겪는 일이다.

베이징=양재찬 편집위원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