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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돌며 인술 25년 윤임중 카톨릭의대 교수|「광원진폐」내 아픔처럼 진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난12일 경북 점촌 시 문경탄광. 진폐증환자를 조사하러 탄광에 간 윤임중 박사(58·카톨릭의대 교수)에게 광원 김광옥씨(46·점촌 시)가 달려와 두 손을 붙잡고 한없이 반가워했다.
『박사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지요. 지난 79년 박사님으로부터 진폐증으로 진단된 뒤 제가 입은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김씨는 10여 년 전 자신이 진폐증에 결핵까지 겹쳐 생사의 기로에서 헤맬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윤 박사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나 윤 박사의「은혜」를 입은 사람은 비단 김씨만이 아니다.
강원도일대의 경력이 꽤 된 광원 치고 윤 박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윤 박사는 탄광촌의 진폐증 구명과 치료에 헌신해 왔다.
진폐증은 폐에 석탄가루 같은 먼지가 들어가 폐 세포를 굳게 하는 난치병이다.
수입이 좋은 인기 임상의사자리를 마다하고 25년간 매달려 온 진폐증의 치료와 연구에 반생을 바쳤다. 외길을 걷는 사람이 드문 우리사회에서 돈과 지위의 유혹을 마다하고 달려온 「봉사의 길」이 검은 탄광을 배경으로 더욱 빛난다.
윤 박사가 진폐증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66년 공군군의관을 마치고 카톨릭의대 예방의학 교실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사실 광산근로자의 건강이나 권익을 생각해 진폐증을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진폐증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자연히 개인적으로 진폐증환자를 많이 대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를 접하다 보니 그들과 친하게 되고 자신이 손을 떼면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불쌍해져」진폐연구를 그만두지 못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윤 박사는 겸손해 한다.
진폐증환자는 지난해만도 약4천명으로 노동부에 의해「공식」확인돼 우리나라에서 발병자가 가장 많은 직업병이다.
진폐증에 걸리면 폐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해 호흡곤란·흉통 등 이 일어나고, 폐 기종 등의 합병증이 뒤따른다.
「탄광 있는 곳에 진폐증 있다」는 말처럼 광원들은 항상 암적 존재의 같은 진폐증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심한 진폐증을 확실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개발돼 있지 않다.
『명색이 25년 동안 진폐증을 연구한 사람인데 광원들에게 희망을 줄 만한 치료제 하나 개발 못해 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고 윤 박사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치료제가 없는 현시점에서 진폐증으로 인한 불행을 막는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초기 진폐환자를 가려내고, 합병증을 치유해 주는 일이다.
윤 박사는 이를 위해 매년 두 번 정기적으로 전국 17개 탄광지대의 병원 등을 2주 가량씩 순회하는 것 외에 필요시마다 수없이 탄광에 간다.『사실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정부나 사업주가 진폐증 연구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진폐환자를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서는 매년 X레이 등을 이용한 정기검사가 필수적인데, 탄광현장에 검사를 나가면 일부업주들은 광원중 일부만 검사하도록 광원경력이 오래돼 진폐증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아예 검사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어 기가 막혔습니다.』
매년 적어도 두세 차례는 갱내에 들어가는 윤 교수는『최근 들어서는 근로자 측은 물론사용자측도 진폐증 진단에 잘 협조하고 있어 흐뭇합니다』라고 말한다. 윤 교수가 지난66년부터 지금까지 진폐증 여부를 진단한 광원 수는 줄잡아 20만여 명. 아마 탄광업주보다 더 많은 광원을 상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들 진찰 광원 중 진폐증으로 확진된 광원수가 약2만 명에 이른다.
『진폐증진단은 대단히 예민한 문제입니다. 병에 걸린 근로자 입장에서는 요양은 물론각종 보상을 받아야 하고, 사용자측은 광원이 진폐증으로 진단될 경우 그만큼 경제적 손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윤 교수는 이 때문에 학자로서 양심에 입각, 정확한 진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 광원들 사이에 윤 박사가 오늘날의 신임을 얻은 것은 어쩌면 이 같은「양심의 진단」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 진폐증이 아닌데도 진폐라고 우기며 원망스런 눈치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광원들의 생활이 어찌나 어려웠던지 병원에 입원한 진폐증환자가 면회 오는 가족을 위해 병원급식을 아꼈다가 주는 실정이었으니까요.』
윤 박사는 진폐증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의술로 수많은 광원들의 목숨을 구했다. 진폐증은 정도가 심하지 않을 경우 합병증만 잘 치료하면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충남 공주출신의 윤 박사는 59년 서울대의대를 졸업한 엘리트 의사지만 항상 스스로를「농부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듯, 광원들과 어울려 때로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진폐증의 예방·갱내작업환경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다.『땅 투기·집 투기로 얼마를 벌었느니, 고급승용차를 사는 등 돈 자랑하는 졸부들을 생각하면 숨막히는 막장에서 생사를 걸고 일하는 광원들이 새삼 위대해 보입니다.』
윤 박사 자신도 수없이 막장을 넘나들었지만 탄광 속에서 직접 일을 안 해 본 사람은 광원들의 고통을 모른다.
『갱내에서 3∼4시간만 작업해 보아라. 연탄 한 장이 얼마나 귀중하고 땀을 흘리는 노동과 생명의 귀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윤 박사가 의대생들을 교육시키면서 하는 말이다.
윤 박사는 80년대 초반 ▲진폐증은 더 이상 광원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악화될 수 있다 ▲용접공들 역시 진폐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새롭게 알아내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윤 박사는 현재 진폐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의 개발을 위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를 계속할 각오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싸운 용사에게도 훈장이 주어져야겠지만 국가경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산업전사에게도 응분의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윤 박사는『숨이 찬 환자가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아무 것도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다』며 오늘도 진폐증 환자들과 감이 존재하고 있다. <점촌=글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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