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어느 '중견기업'의 특별한 X-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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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왼쪽에서 셋째) 덕신하우징 사장과 생산직·사무직 직원들이 서울 신월동 사옥에 모였다. [사진=김형수 기자]

충남 천안에 있는 건축자재 제조업체인 덕신하우징(www.duckshin.com) 직원들은 요즘 설렘에 잠을 설치고 있다. 100여 명 임직원 전원이 부부 동반으로 22일 태국 파타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다. 이들 중 130여 명은 이번에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엔 외국인 근로자 20여 명도 함께 간다. 16년째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명석(47)씨는 "강원도 정선에 떨어져 사는 아내는 '뭘 준비해야 하느냐'며 매일 전화를 건다"며 함빡 웃었다.

이 특별한 단체 여행은 지난해 말 계획됐다. 제주도에서 열린 송년회에서 김명환 사장은 "순이익이 30억원 이상 나면 내년 송년회는 태국에서 열겠다"고 약속했다. 목표는 올 상반기에 초과달성했다. 6월 말부터 직원들은 여권을 신청하고 리조트와 항공권을 예약했다. 김 사장은 "월급을 올려줘도 돈을 아끼는 게 몸에 밴 생산직 직원들에게 해외여행은 남의 나라 얘기"라며 "열심히 일하면 이런 날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550억원에 53억원의 순익을 올릴 전망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의 성과급을 전 직원에게 지급했다.

김 사장은 버는 일만큼 나누는 일에 신경을 써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는 유별나다. 20여 명의 산업연수생에게 한국인 고졸 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 태국 여행 뒤 1년 반 만에 고향에 갈 수 있게 된 인도네시아 출신 자이날(35)은 "연말 보너스를 들고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창업할 때부터 이익은 종업원과 나눠 가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니까요." 서울 영등포의 철제 자재 유통업체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김 사장은 1979년 밑천 300만원으로 서울 상암동(난지도)의 버려진 땅에 천막을 치고 독립했다. 2.5t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쑥쑥 자라났다. 89년 건축자재 제조업으로 전환해 성공했으나 98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다. 납품하던 대우자동차 협력업체가 쓰러지면서 어음 60억원이 부도 나 자금 흐름이 막혔다. 흑자도산이 가능했지만 이때도 40여 명의 직원 일자리가 걱정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건축 공기를 단축할 신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10여 년 동안 기록한 업무일지 10여 권을 들고 은행을 수소문한 끝에 120억원의 신규 대출을 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최신 기계를 도입했다. 2002년 출시한 '스피드 데크'(건축물 바닥에 들어가는 구조보강재)는 초고층 아파트 건설 열기와 맞아떨어져 불티나게 팔렸다.

글=임장혁 기자<jhim@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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