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대중문화 개방 감정차원 아닌 생존의 문제다|이영미씨<연극·노래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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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문화 침투에 대한 우리들의 거부감은 아직도 일본에 대한 즉발 적인 혐오감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목 대중문화에 가장 익숙한 국민이면서도(물론 일본인들을 제외하고)「일본」 이라는 말 자체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본의(혹은 일본의 것을 모방한)가요나 잡지·만화, 그들의 감각적 질감이나 심지어 지나칠 정도의 폭력과 변태적 외설성에 익숙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일본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갑자기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삶 속에 너무 익숙하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한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 통치라는 치욕적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렇게 일본에 대한 즉발 적 혐오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각한 일본문화침투를 막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즉발 적인 혐오감만으로는 곧 공식적이고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일본대중문화를 막아내기에는 허약하다. 단지 일본 것이기 때문에 기분 나쁘다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의지와 대중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침투·범람의 문제는 단지 문화민족의 민족적 자존심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문제다.
일본대중문화의 범람은 우리에게 문화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정치적인 손해를 끼친다.
우선 일본 문화산업은 한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얻는 셈이며, 여기에서 얻어 가는 경제적 이익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쉽게 볼 수 있는 복제·번역·번안 물들도 대중문화의 개방이 이루어진 후에는 모두 작품 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미 완성된 작품이 들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영화나 만화·음반·비디오 산업에 일본의 자본이 들어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법과 음반·비디오 법은 영화·비디오·음반 업의 외국자본 침투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
또 대중문화의 침투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생활감각을 변화시켜 일본과 더욱더 동질적으로 만들며 결과적으로 일본의 여러 소비재 수입을 촉진시켜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준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의 무역역조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나아가 일본에 대한 기술의존도나 자본침투는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일본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으면 그나마 남아 있었던 일본에 대한 혐오감이나 적대감은 더욱 줄어들 것이며 일본과의 문화적 동질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점점 일본인의 시각과 일본인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며 일본과의 정치적·군사적 밀착도 그리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식민지시대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해낸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문제는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양국간의 건강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항상 일본의 우위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이 그네들만 못해서가 아니다. 미국 영화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보듯이 대중예술의 시장 장악이란 자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며 정치·경제적 영향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대등한 문화교류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상태에서 대중 문화시장의 개방이란 이래저래 일본에게는 이익을, 우리에게는 손해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지금까지 아무런 감각적 혐오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혹시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문화는 안되지만 미국문화는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의존만큼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의존도 심각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전세계 자본주의 권 대중문화의 종주국이며 일본 대중문화도, 우리「대중문화도 그 막강한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대중 문화에 대한 개방은(정치·경제적 3국 관계가 정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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