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요코하마 FC 기적'은 최성용의 아내사랑 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 저희 남편은 지금 운동하러 나갔습니다.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또박또박한 한국어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일본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최성용(32.작은사진)의 부인 아베 미호코의 목소리였습니다.

최성용은 올 7월 수원 삼성에서 일본 프로축구 J2(2부리그) 소속인 요코하마 FC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시민구단 요코하마의 J2-리그 우승과 J1 승격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최성용이 수원이라는 안정된 팀을 떠나 열악한 환경의 J2로 옮긴 것은 부인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3년 만에 임신한 아베는 가족과 친지가 있는 일본에서 출산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지난달 아들이 태어났고, 이름을 지효라고 지었습니다. 지효는 복덩이였나 봅니다. 태어나고 몇 주 뒤에 요코하마가 J2 우승을 확정지었으니까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취재를 위해 일본에 간 김에 최 선수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지효가 열이 펄펄 나서 급히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인터뷰는 취소됐지만 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최고 인기 팀 우라와 레즈의 J리그 첫 우승 못지 않게 요코하마 FC의 J리그 승격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1993년 J리그 출범 당시 요코하마에는 요코하마 플루겔스와 매리너스, 두 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루겔스는 재정난을 겪다가 98년 매리너스에 합병되고 맙니다. 당시 플루겔스를 지지하던 시민들이 돈을 모아 만든 팀이 요코하마 FC입니다. 이 팀이 지역리그→JFL(실업리그)→J2를 거쳐 8년 만에 J리그로 올라선 겁니다.

최 선수는 "처음 이 팀에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전용 연습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클럽하우스는 컨테이너 박스 2개를 붙여놓은 것이었습니다. 100엔 동전 한 개를 넣으면 5분간 물이 나오는 샤워기로 땀을 씻어냈습니다.

최 선수는 이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습니다. 90년대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치던 미우라 가즈요시(39)와 조 쇼지(31)였습니다. 이들은 화려한 명성을 잊고 자신들의 현 수준에 맞는 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팀 내 최고 대우인 조 쇼지의 연봉이 1000만 엔(약 7800만원)을 조금 넘는 정도고, 최하 연봉인 350만 엔을 받는 선수도 많다고 합니다. 최 선수는 '왕년의 라이벌'과 의기투합했고, 팀은 승승장구했습니다.

J리그로 올라가긴 했지만 구단의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 팀'에 대한 믿음으로 8년을 기다려온 팬들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와 보람을 맛봤습니다. J리그는 내년 시즌 개막전을 요코하마 FC 대 요코하마 매리너스의 '더비 매치'로 치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 선수와 얘기를 나누면서 한국 축구의 현실이 계속 스쳐갔습니다. K-리그 몇 구단은 팬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연고지를 옮겼고, 고양 국민은행은 K-리그 승격 자격을 얻고도 "올라가지 않겠다"고 발표해 판을 깨버렸습니다. "지역 주민과 밀착하지 않으면 축구단이 발전할 수 없다"는 최 선수의 말이 오래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도쿄=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