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열정비 서두르는 민주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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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개월여동안 정치권을 사정없이 몰아쳤던 뇌물외유와 수서태풍이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민자당내 민주계 소장파 의원들이 잦은 모임을 갖고 신춘정국에 대비한 전열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형우·신상우·박관용의원등 민주계내의 비주류 증진그룹과 강삼재·문정수·최기선의원등 소장의원들의 모임에서는 수서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 임시국회 소집등을 통한 신공안정국의 정면돌파를 주장하는가 하면 김영삼대표를 중심으로한 당의단일지도체제 조기확립문제까지 표면화시키고있다.
지난해11월 내각제 각서 유출 파문때 이미 탈당서명까지냈던 이들 의원들이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 것은 ▲김대표와 민주계로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역공을 통해 차단하면서 ▲김대표의 대권구도에 힘을 모아주고 ▲나아가서는 탈당의 명분을 축적하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포석으로 분석된다.
수서의혹의 불똥이 민자당으로 옮겨붙은 지난21일낮 여의도 모음식점에 모인 박관용·이인제·서만후·최기선·신영국의원과 원외의 강인섭당무위원은 『당에 잘못이 있다면 이를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한다』며 국정조사권 발동을 건의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따라 22일 오전 민자당의원총회에서는 최형우·황낙주·신상우·박관용의원이 『정부의 잘못을 여당이 무조건 덮어주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국정조사권 발동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한다』며 『3당통합에 안주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반성도 해봐야 할때』라고 입을 모았다.
최형우·심완구·문정수·정정훈·강삼재·허재홍·박태권·조만후·최기선·이인제의원등은 자신들의 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총직후 시내 모호텔에 모여 민주계의 단합을 다짐하면서 여권의 공안파를 집중성토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김대표의 측근인 김동영정무장관은 20일 김봉조·김덕룡·문정수·문준식의원을소집한데 이어 22일아침에는 김동규·심완구·강신옥·백남치·박태권·신하철의원과 만나 『국조권 발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수 있다』며 긴급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자리에서는 김대표의 측근들에 대한 소장파·비주류측의 비판이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민주계내부에서의 자체불만도 이들의 움직임을 부추기는데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데는 뇌물외유사건등이 터져나온 배후에 여권 내부의 공안파가 자리잡고 있다는 공통인식에서 출발하고있다.
강삼재의원은 『뇌물외유사건이 임시국회소집 바로 다음날인 1월22일 터지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면서 『검찰에서 무역특계자금이 수사대상이 되지않는 것을 몰랐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김대표가 1월 임시국회에서 보안법·안기부법·경찰중립화법등 개혁입법을 마무리 짓고 「민주화의 완성자=YS」라는 등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서 대권가도를 질주하려던 구상을 뇌물외유사건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정국운영에서는 김대표의 차기대권주자 확보를 기대할 수 있지만 정치권을 사정으로 흔들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권력 핵심부에 존재하는한 김대표의 구상은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21일 아침 김대표의 상도동자택을 찾은 최형우·문정수의원은 이런 문제의식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김대표에게 전달했는데 『김대표도 현실인식을 어느 때보다 분명히 갖고 있더라』고 전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때 이들의 모임이 김대표의 묵인 또는 방조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김대표는 김동영장관등의 현실파와 최형우·강삼재의원등의 강경파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 울타리안에 「방목」하면서 정국을 저울질하고 있는것으로 분석된다.
소장파의원들은 늦어도 5, 6월까지 노대통령과 김대표간에 차기대권과 관련한 최종담판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 한 의원은 『내년 2월께로 예상되는 14대총선에 대비, 탈당하게 되더라도 집(신당) 지을시간은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즉 5, 6월까지는 너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은채 적정수준으로 김대표에게 힘을 몰아줘 김대표 중심으로 당이 운영되면 그나름으로 좋고, 안될 경우 탈당으로 가는 명분을 얻으려는 계산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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