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후세인행동」에 달렸다(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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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계속 밀어붙인뒤 “종전”/“철군아닌 작전상 후퇴일뿐”/후세인 재기못하게 군사력 철저파괴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의 철수방송이 있은후 비교적 명확하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목표와 종전의 조건을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밝힌 내용이 유엔의 결의안을 모두 수용치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철수가 아닌 작전상 후퇴라고 규정하며 이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발표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언급을 피했던 후세인 및 이라크의 장래와 결부된 미국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은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지금 남은 군사력이라도 보존,중동지역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그는 이번 침략으로 빚어질 가공할 사태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질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이라크가 다시는 이 지역의 불안요소가 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파괴할 것이고 후세인에게는 전쟁의 책임을 묻겠다는 요지다.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밖으로 쿠웨이트로부터의 무조건 철수와 유엔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조건으로 내세웠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이제는 이라크군의 완전한 무장해제와 후세인의 축출없이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상전시작 직전에 이라크가 무조건 철수를 할 경우 철수하는 군대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제는 「무기를 놓고 가는 경우」에만 안전을 보장한다고 한 것이다.
미국은 이 시점에서 이라크의 철수를 받아들일 경우도 미국의 위신을 충분히 세우면서 전쟁의 조기에 끝낼 수 있다. 쿠웨이트도 해방됐고 후세인에게도 망신을 톡톡히 주어 미국의 당초 목표를 모두 이룬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의 계속을 고집하는 것은 미국의 전쟁목표가 부시의 발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목표달성의 첩경이 이 기회에 공화국수비대를 궤멸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소련제 T­72탱크로 중무장한 이 부대가 고스란히 철수할 경우 후세인의 권력기반이 그대로 남아 그가 계속 권력자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물론 언젠가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다시 소요를 일으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의 작전의 핵심은 이 부대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거나 완전히 무장해제된 상태로 바그다드로 돌려 보내는 것이다.
미군의 주력이 유프라테스강까지 진출하여 이 부대의 퇴로를 막고 있는 것도 비록 사상자가 나더라도 이러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자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공화국수비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목적이외에도 바스라시를 포함하여 이라크의 유일한 바다관문인 파오반도를 장악,종전후 협상카드로 이용할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후세인을 완전이 굴복시킨다 하더라도 그가 계속 권좌에 남아 있을 경우를 생각하여 이라크에 대한 압력으로 이같은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점령을 시도할 경우 침략자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도 높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다국군 이라크 침공대비 전투력 확보/군사력 남겨 후일기약 속셈/이라크,살아남기에 “안간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26일 하룻동안 두차례에 걸쳐 쿠웨이트내 이라크군 철수명령을 내림으로써 다국적군의 결속진격으로 화급해진 그의 궁지를 드러냈다.
군사·외교소식통들은 아랍인들 특유의 자존심 및 표현방식을 고려할 때 이는 실질적인 굴복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미국은 후세인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며 공격강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걸프사태 발발이후 지난 7개월간 강·온 양면작전을 구사하면서 때로는 고도의 기만전술로,때로는 심리전으로 미국등 다국적군 진영을 골탕먹인 후세인의 예측불가능한 행동패턴에도 일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후세인의 철수명령을 놓고도 해석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첫째로 가장 유력한 분석한 후세인이 지금 상태에서나마 가능한대로 군사력을 잔존시켜 후일을 기약하자는 「생존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작전상 후퇴이지 「패주」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라크는 이를 위해 이미 이란에 1백70여대 가량의 항공기를 도피시켜 놓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접경의 방어선 사담 라인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쿠웨이트시 마저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에서 굳이 2류급의 전투병사들을 무리하게 희생시킬 필요가 없이 일단 이라크영내로 「이동」시키자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둘째는 이 철수명령에 따라 도망치듯 등을 보이고 후퇴하는 이라크군에 대해 다국적군이 계속 추적,공격을 감행할 경우 소련등 일부국가에서 미국의 지나친 살상을 자제하라는 움직임이 일것으로 점친 고도의 기만술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셋째는 군사전술적인 측면에서 볼때 이라크는 이제 사우디·쿠웨이트 접경이 아닌 이라크·쿠웨이트 접경지역에서 제2전선을 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후세인은 부시 미 대통령의 의도가 쿠웨이트해방에 한정되지 않고 후세인정권의 붕괴 및 이라크의 정치·군사적 무력화까지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쿠웨이트를 탈환한 다국적군이 이라크영내로 깊숙히 진격해올때 이에 대한 반격전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특히 여기에는 15만명의 정예 공화국수비대가 막강군사력을 아직 보존하고 있기때문에 쿠웨이트에서 철수한 병력들까지 여기에 가세하면 전력은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로는 세계 각국에서 집결된 군사력에 대항,한달이상을 버팀으로써 아랍인의 긍지를 크게 높였다는 점에서 벌써 「정치적 승리」는 거두었기 때문에 설사 철수로 인한 군사적 패배를 시인하더라도 실보다는 오히려 득이 많다는 계산이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므로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노리는 미국의 기도만 분쇄할 수 있다면 이라크는 어디까지나 아랍의 패자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섯째로는 국내 불만 무마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8년간 이란·이라크전을 치르고서 또다시 전쟁을 치러야하는 이라크 국민들에 대한 자신의 체면유지 배려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후세인은 또한 공화국수비대를 보전시켜 자신에 대한 쿠데타시도등 일부 군장성들간의 불만을 계속 억압해 나갈 속셈도 아울러 가졌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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