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서 맞붙은 개정 사학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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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을 사회주의적 이사제도라는 등 과격한 용어를 써가며 이데올로기적으로 단죄하려 한다."(법무법인 태평양의 가재환 변호사)

14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올 7월 시행된 개정 사립학교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놓고 공개변론이 벌어졌다.

이날 재판에서는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석연.이헌 변호사 등이 위헌론을, 가재환.곽태철.유철형 변호사 등이 교육인적자원부를 대리해 합헌론을 폈다.

공개변론은 지난해 말 우암학원이 청구한 헌법소원사건과 조용기 우암학원 설립자가 올해 3월 청구한 헌법소원사건 등 2건을 병합해 이뤄졌다. 주심은 김종대 재판관이 맡았다.

◆ "시장 경제 흔들 우려"=양측은 ▶개방형 이사제 ▶임시이사 제도 ▶이사장의 학교장 취임 제한▶관할청의 임원 취임과 직무집행정지권을 중심으로 공방을 벌였다.

특히 '학교법인은 이사 정수의 4분의 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신설 법인의 경우 관할청)가 2배수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 선임하여야 한다'는 법 14조3항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청구인 측 이석연 변호사는 "개방형 이사제는 사학의 건학 이념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립학교 법인을 공립화하려는 것으로 헌법의 기본 토대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학은 설립자의 사유재산도 아니며, 그렇다고 공공재산도 아니므로 재단법인이 국가 간섭 없이 운영하는 게 본질이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건학 이념에 입각한 사학의 다양성과 독자성이 상실되면 특정 이데올로기와 특정 지배세력에 의한 획일적 관급형 공교육이 판치게 된다"며 "코미디적인 법에 대해 헌재가 과감하게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를 대리한 가재환 변호사는 "사학법을 이데올로기 문제로 보지 말라"며 "청구인들은 ▶특정 이데올로기 교육 ▶사회주의적 이사제도 ▶사학 장악 등 과격한 용어를 써가며 사립학교법을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몰고 가려 한다"고 맞받았다.

가 변호사는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비리 사학의 과거를 청산하고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헌법이 국가에 부여한 교육제도 형성권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측 변호인단은 "이사 정수의 4분의 1 정도만 개방형 이사로 하자는 것은 경영권을 장악하자는 게 아니라 감시 기능을 갖추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구인 측은 "현실적으로 이사회에서 그 정도의 비율이면 주도적으로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되받았다.

◆ 사립학교의 공립성 논란=정부 측 변호인단은 국내 사립 중.고교 운영비의 98%가 국고 지원금과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되는 점을 근거로 사학은 공공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곽태철 변호사는 "사학이 비록 개인 재산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운영의 자율을 향유한다 해도 교육의 공공성과 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교육 형성권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청구인 측은 공립학교의 획일적 교육을 보완해 주는 보완재로서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헌 변호사는 "국가가 교육을 담당하지 못했던 어려운 시절에는 사학의 설립을 유도했으면서 사학으로부터 이미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을 빼앗은 국가가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신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정부 측은 국가 지상주의적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며 "미국만 해도 현재의 교육 풍토가 만들어진 데는 자율적인 사립학교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강조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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