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아리아' 파리 청중 넋을 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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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여섯 차례의 커튼콜과 세 곡의 앙코르 끝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리듬박수를 보냈다.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자동인형의 아리아'에선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한국가곡 '선구자'에 이어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중 '프랑스에 대한 경례'가 끝나자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객석에서 무대 앞쪽으로 나와 꽃다발을 주고는 폭죽을 터뜨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유명 성악가 공연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장난기 섞인 세러모니를 하는 파리의 '명물'이라고 한다. 꽃다발을 준비했다가도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잠자코 있는 '현장 평론가'로 유명하단다.

커튼콜 여섯 번, 앙코르 세 곡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12일 파리의 유서깊은 샹젤리제 극장 무대에 섰다. 콜로라투라(coloratura.화려한 고음을 구사하는 창법) 아리아 여섯 곡으로 파리 청중을 사로잡았다. 1913년에 개관한 샹젤리제 극장은 '파리의 카네기홀'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샹젤리제 극장이 기획한 '위대한 성악가들' 시리즈의 하나로 열린 이번 공연에서 조씨는 모든 여주인공이 정신착란증에 걸려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에 삽입돼 유명해진 '루치아' 중 '나를 부르는 부드러운 속삭임'을 비롯해 벨리니의 '청교도' '몽유병의 여인' '캐퓰릿가와 몬테규가', 토마의 '햄릿' 중에 나오는 고난도의 아리아를 선사했다. 투명한 고음과 정확한 음정, 폭넓은 다이내믹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무대의상을 세 벌이나 바꿔 입어가면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랑마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여성은 광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곤 한다. 오페라의 여주인공도 정신착란의 세계에서나마 참된 사랑을 맛본다. '광란의 아리아'는 권력과 전쟁으로 분열된 세계에 대한 반란이자 그 너머 휴머니즘이 지배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다.

광란의 아리아는 정신 잃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기에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화려한 테크닉과 넓은 음역, 탁월한 가창력을 요구한다. 긴 호흡에다 고음(高音)과 트릴(빠르게 떠는 장식음)의 연속이다.

정신착란증 여주인공의 아리아

공연은 몽펠리에 오케스트라(지휘 알랭 알티놀뤼)와의 협연으로 진행됐다.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은 조씨의 2006년을 마무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조씨는 파리 독창회에 이어 14일엔 런던 캐도건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씨와 듀오 리사이틀을 했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정상급 예술가들을 지원해 '문화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권이혁)이 마련한 무대다.

조씨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에서 음반 계약 제의를 받았다"며 "산하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과 데카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만 남았다"고 말했다. 또 "내년 1월 이탈리아 볼자노에서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출연하고, 9월 프랑스 툴롱에서는 '라 트라비아타'에 데뷔한다"고 밝혔다.

파리=글.사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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