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박룡내등 향토색 짙은 작품 내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금강이 안고 흐르는 백제의 고도 공주와 부여. 금강은 백제의 젖줄인 동시에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방멱이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들어온 외세인 당나라에의해 유린당하고부여를흐를 때는 이름 마저 치욕스런 백마강으로 불리는 금강. 또 일제에 의한 동학농민군의 패망을 지켜온 강이 금강이다.
한반도 속살의 유린에도불구하고 공주와 부여를 잇는 높낮은 구름들은 가장환한 햇빛을 받아 빛난고 있다.
『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시들고 싶진 않다.』
신동엽시인 (1930∼1969)은 위와 같이 되뇌며 금강을 거닐었다. 외세에 의한 한으로 응축된 혁명. 비단결같이 보드랍게 혹은 풍성한 굽이로 곰같이 느리게 흐르는 강에서 들려오는 사랑, 혹은 시를 생각하며 달밤에 공주의 산성과 곰나루를거닌니 중씨는 장펀서사시『금강』을 비롯해 수많은시를 얻어 한반도의 흙냄새와 역사가 밴 민족시의 한봉우리를 차지했다.
박룡내시인 (1925∼1980)이 한의 응축된 정서를 얻은곳도 햇살이 가장 맑다는 부여에서다. 박씨가 태어나자란 곳은 강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여를 늘 자기의 고향이라 생각했다.
높지도 않고 낮지 않으면서 올망졸망 퍼져있는 깨끗한 산의 능선, 부여에서공주가는 길을 가장 사랑했던 박씨는 시도때도없이 이곳을 오가며 얻은 시로 한국적 서정시의 한 전형을 보여 주었다.
비록 왕국은 패망했다 하더라도 나무 한그루 바위 하나에 백제의 혼이 살아있는 이 고도의 자연들이 민족의 시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교육도시 공주의 문단은공주대와 떼려야 뗄수 없는깊은 관련을 갖는다. 일제시대말까지 도청소재지로서 충남의 문화중십지였던 공주는 그러나 해방전까지 별다른 지역문단의 움직임을보이지 못했다. 48년 공주사범대학이 설립되면서 이재복 이원구 임헌도씨등의문인들이 대학강단에 서면서 문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세문인들을 주축으로 6·25를 맞아 피난온 정한모 장서언씨등이 53년 「시회」를 결성하면서 공주에 본격적인 문단활동이 일기 시작했다. 「시회」에 다시 당시 계룡산에서 수도하고 있던 문학거사 김구용씨,공주농고교사 김상억씨등과 함께 공주사대 재학생 임강빈 임성숙 최원규씨등이 가세, 시낭송회·합평회등의 활동을 통해 폐허의 고도 공주에 문학의 모닥불읕 피웠다.
50년대 「시회」를 통해 활동한 공주사대 출신 문인들로는 김명배 안명호 박후식 조재혼 오명훈 이상일 정기방 유근조 유법학 김선배씨등을 꼽을수 있다.
한편「시회」가 범 공주사대문학서클로 비대해지자 여기에서 다시 56년 조재훈 오명규 정기방씨등이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하기위해「시맥」동인을 결성, 동인지를 4집까지 내며 활도했다.
50년대 후반 이원구 권선근 박용래 한성기씨등 이미 문명을 얻은 시인들이 결성한 동인 「과수원」도 공주, 나아가 충남문학 기틀 다지기에 일익을 담당했다.
60년대 들어서는 50년대「시회」에서 활동하던 공주사대 졸업생을증심으로20여명이「시혼문학회」를 결성,동인지『시혼』을 4집까지 내며 활동했다. 공주사대재학생들은 「수요문학회」로 이름을 바꿔 시화전·문학의방등을 개최하며 활동했다. 이때 활동한문인들로는유금호 윤강원 최법두 노동석 유법환 구중회 강석주 조동길 심규식씨등을 들수있다.
70년대 들어서는「수요문학회」가「율문학회」로 바뀌면서 역시 공주사대를 중심으로문학활동을 펼치다 80년 서울의 저항시인들을 불러 시낭송회를 했다가 5공의 철퇴를 맞아 해산됐다.
대학중심으로 문단활동이 펼쳐져 정치적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주문단은 80년대 정영상 이정록 조재도 박계회씨등이「훈누리문학회」「삶의 문학」등의 동인을 결성, 혹독한상황하에서 활동하던 공주문인들은 민주화추세에 힘입어 88년 「공주 문학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각장르를 망라해 30여명의 공주문인들로 결성된 「공주문학회」는 89년 「문협공주지부」로 발전, 현재 회원 34명으로 기관지 『공주문학』을 펴내고 있는가 하면 시낭송회·시화전·주부백일장등을 개최하며 공주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문협공주지부」는 또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대전으로부터 「문협충남지부」를인수, 파남거주 문인들의 작품선집인 『충남시선집』『충남소실선집』『충남아동문학선집』 등을 간행하며 향토 문인들의 창작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한편 부여에서도 읍단위로서는 보기 드물게 50년대말부터 이석호김붕한이양수씨등이 「부소문학회」를결성, 문단의 움직임을보이기 시작했다. 60년대들어서는 조남익 김용철 이진석박계홍씨응의 「백류문학회」와 신동엽 노문 이상비씨등의 「야화문학회」가 결성돼 부여문단을 일궈나가다 70년대들어 백제의 문예부흥을 꾀한다는 취지의 「백제문학회」가결성돼 부여문인들을 망라, 문학강연등을 펼치며 80년대초까지 활동했다.
그뒤를 이어 20대의 문형렬 최대철 유병철등이 중심이 돼 「백지문학회」를 결성해 박용래시비 건립모금 문학의 밤, 신동엽 생가·시비보전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동인지 『백지』를 2집까지 내다 해체 됐다. 「백지문학회 」해체 이후 별다른 활동없이 5,6년을보내던 부여문단은지난 8일 창립 총회를 열고 「사비문학회」를 결성했다.
회장 이진석씨를 비롯, 전장르에 걸쳐 회원14명으로 결성된 「사비문학회」는 3월중 기관지 『사비문학』의 창간과 아울러 문학강좌 및 합평회를 통해 백제 최후의 수도 부여에 아직도 우리민족의 혼에 살아 숨쉬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전할 예정이다.
【공주=이경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