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겨냥 「수서」정치공세/김대중총재 회견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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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 이미지 손상 청와대에 전가/“헌정 존중”밝혀 강공은 않을듯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수서사건에 대한 선 진상규명·후 재발방지의 기존원칙을 재확인하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민자당 탈당 ▲중립내각구성 ▲권력핵심부의 전면 재개편 ▲개혁정치 추진 등 네가지 정치적 요구를 내놓음으로써 수서문제에 대한 적극공세를 폈다.
이날 제시된 김총재의 수서사건 수습구도는 수서사건의 의혹과 진상규명의 책임을 노대통령에게 부담지우면서 평민당은 수서의 수렁에서 벗어나겠다는 여러가지 복선을 깔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는 이같은 수습구도를 「헌정질서에 따라 처리한다」는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평민당이 결코 현 정치권의 판도가 무리하게 깨지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는 평민당이 비록 거창한 공세를 벌이지만 정국을 파국으로 까지 몰고갈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민당의 공세가 다분히 수사적임을 드러낸 것이다.
김총재는 정치적 요구의 마지막 투쟁 단계로 노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를 정치권의 의원직 총사퇴와 연계시켜 내놓았으나 그것을 실질적으로 밀고갈 의사가 있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김총재가 이같은 수순의 정치적 해결방안을 내놓은 것은 수서사건을 정치문제로 전환시켜 다가올 지자제선거에서 카드로 쓰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차피 수서사건으로 평민당의 이미지가 손상된 마당에 청와대·행정부·검찰 등 권력기관의 잘못을 최대한 폭로해 노대통령의 정치력 부재쪽으로 관심을 돌리겠다는 속셈이다.
이같은 김총재의 계산은 기자회견에서 수서사건이 공안세력에 의해 축소·은폐되었고 현재의 정국상황을 공안통치로 규정한 부분에서도 감지된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없고 검사출신들에 의한 공안통치만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부의 수서문제 처리방식에 의혹을 걸어두자는 의도다.
결국 김총재의 정치적 계산은 수서사건을 평민당도 관계된 뇌물사건으로 잠재우지 않고 이를 정치사건화해 지자제선거 및 14대총선,나아가 대권경쟁에 계속 이용할 수 있는 공격거리로 전환시키자는 것이다.
김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청와대·검찰·안기부 등 핵심권력기관의 전면재개편과 특히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의 국회임명동의제를 내놓은 것은 권력기관이 여권에 휘둘리는 속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김총재의 정치적 요구가 실현되리라고 보는 견해는 거의 없다. 정치적 공세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야당의 발상으로 수서의혹에 관련된 정치권의 도덕성을 회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이규진기자>
김대중 총재 회견내용 요지
우리당은 검찰에 의해 행해진 수서사건의 「진상규명」이 진상의 규명이 아닌 축소와 은폐로 일관됨으로써 국민의 의혹과 분노만 가중시켰다고 확신한다. 또한 노대통령의 해명도 전혀 납득과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본다.
우리 당은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에 대해 노대통령이 그 과정에서 이를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협조공문을 발송하고 청와대의 민정·사정·경제 등의 수석 비서관이 모두 이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당정회의가 두차례나 열렸고 부총리와 당정책위의장 등 행정부의 각료와 당의 간부들 다수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 당의 최고위원 전원이 결재까지 하고 있다.
그것뿐 아니라 노태우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두번이나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관하다고 한 노대통령의 변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참으로 국민앞에 고해하는 심정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노대통령은 또한 청와대와 한보와의 관계에 대해 밝혀야 한다. 비자금의 청와대 유입설에 대해 밝히고 당정회의의 경위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즉각적이고 철저한 재수사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소·은폐수사를 자행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먼저 반드시 사퇴시키고 수서사건에 관련된 청와대와 행정부내의 전·현직 모든 인사에 대해 엄중 문책이 있어야 한다.
수서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더불어 노태우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의 재발방지는 물론 국정의 개혁을 조속히 해야 한다.
첫째,무엇보다도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의 당직을 떠나도록 권고한다.
둘째,전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공안통치의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노재봉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셋째,청와대와 검찰과 안기부 수뇌부를 민주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로 전면 재개편해야 한다.
넷째,노정권은 국가보안법과 안전기획부법의 개폐,그리고 경찰중립화법의 제정,지자제의 차질없는 실시 등 개혁정치를 적극 추진할 것을 국민앞에 다짐해야 한다.
만일 노대통령이 우리의 이러한 성의있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때에는 우리 당은 부득이 그 다음의 조치로서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겠다. 이 경우 우리 정치권도 의원직을 총사퇴하고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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