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없는 후세인 백기든 셈/소와 철군합의 왜 했을까(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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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상전땐 국가존립 위험 판단/항전방송은 대내 충격 완화용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소련이 제시한 걸프전쟁종식 평화안의 기본골자를 수용,쿠웨이트 철수를 결심한 것은 임박한 다국적군의 지상공격과 이에 따른 후세인 자신의 정치적 운명,그리고 이라크 국가존립에 대한 위기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라크군은 지난 1월17일 개시된 다국적군의 9만회에 이르는 공중공격으로 최정예 공화국수비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재공권이 거의 상실된 현재 지상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쿠웨이트주둔 50만명의 이라크군이 궤멸적 타격을 입게될 것으로 후세인은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이 가장 신뢰하는 공화국수비대가 무력화되고 쿠웨이트주둔 주력군이 충분한 방어를 해내지 못할 경우 후세인은 이어 이라크 영토의 피침과 나아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바그다드정부의 운명도 마찬가지로 위험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대통령은 따라서 지난 15일 혁명평의회 발표를 통해 이미 철수의사를 시사했으며,아지즈 외무장관을 모스크바에 파견,소련과 철군문제를 상의하는등 「명예로운 철군」의 길을 모색했었다.
소련은 이라크측의 철수를 조건으로 후세인의 정치적 생명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삽입했으나 미국이 이에 대해 완강한 거부자세를 보임에 따라 후세인은 철군에 따른 다른 단서를 붙이기 어렵게 됐었다.
21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은 후세인의 이같은 딜레마를 반증하는 7개항의 철군 및 평화안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소련 평화안을 대폭 수용한 이번 이라크측의 철군동의안은 역시 미국이 강조해온 무조건 즉각 철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주장해온 팔레스타인문제 연계주장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이라크측의 이같은 종전·철군·평화안은 사실상 다국적군의 철수요구에 「항복」에 다름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세인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10가지에 달하는 각종 연계조항들을 거의 포기한 것은 20∼24일 사이로 알려진 다국적군의 전면 지상공격으로 이라크가 결정적 타격을 입게될 것을 사전 예방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위기감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후세인의 이같은 위기감은 지금까지 다국적군의 첫 이라크 공습효과에 대한 여러가지 긍정·부정적 견해에 대해 이라크군의 공습피해가 심각함을 시인한 것일 수도 있다.
후세인은 또 지금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여왔으나 대부분의 아랍국들이 반후세인 자세를 보이고 있고 친이라크 국가들마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우선철수를 요구함에 따라 사실상 외교적으로 완전한 고립상태에 있었다.
더구나 6개월 이상 계속된 대 이라크 경제봉쇄가 지상전을 목전에 두고 있음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후세인은 군사적·외교적·경제적 압박이 계속 가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상전으로 전쟁이 확산될 경우 이라크의 국가보전마저 어렵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세인은 소련이 제시한 평화안에 대해 미국이 즉각 거부함에 따라 하마디 부총리를 북경에 파견,중국의 중재역할을 모색했으나 중국역시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를 요구하는 부정적 반응만 얻게돼 다시 소련안에 대한 수용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소련이 휴전후 이라크에 유리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기대하고 소련과 협력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후세인이 아지즈 외무장관을 통해 모스크바에서 평화안 수락을 발표하기 직전 방송을 통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재천명한 것은 평화안 수락내용과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종의 수수께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 침공후 지금까지 강·온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후세인의 양면성은 그 자체로 일관성을 가진 역설적 모양을 갖추고 있다.
후세인은 지금까지 유화적 자세를 보일때 마다 강경발언을 항상 덧붙여 이라크 국민에 대한 절망감을 억제해왔다.
따라서 후세인의 21일 「결사항전」도 이라크군의 이탈이나 와해를 사전 방지하고 국민들의 심각한 심리적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대내용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번 평화안 수락은 미국의 대응태도와 팔레스타인문제가 변수로 남아있어 그 추이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군의 즉각 철수와 4일내 철수 완료를 요구,어느정도 상치되는 부분이 있어 미국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를 남기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문제가 이번 평화안 수락 내용에 포함되지 않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내 요르단인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후세인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이번 8개항과 유엔결의안과 차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동안의 유엔결의안중 8개항에서 빠져있는 주요내용,▲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쿠웨이트 및 제3국에 대한 피해보상(674호) ▲쿠웨이트 정부 복원(661호) ▲쿠웨이트 합병 무효화(662호)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견해차를 해소할 회담을 갖도록 촉구(660호) 등이다.
그밖에 유엔결의안에 없거나 미국등 다국적군 주도국가들이 독자적으로 강조한 내용들과 이번 8개항은 ▲유엔결의안에는 철수일정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미국은 『철수없인 휴전없다』고 주장해온 것이 「휴전 하루 뒤 철수시작」 항목과 배치되며 ▲경제제재 및 대 이라크 유엔제재의 중지도 유엔결의안에는 언급이 없고 ▲철군을 걸프전쟁 직접 관련국들이 아닌 나라들이 감시한다는 내용도 유엔결의안에는 언급되지 않은 것들이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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