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데 웬 투혼? '망신살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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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에서 이른바 '빅3 스포츠'인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가 도하에서 잇따라 망신을 당했다.

야구는 일본의 사회인 선수들에게도 졌고, 축구는 내전 통에 훈련도 제대로 못한 이라크에, 농구는 20점 접어줘도 이긴다는 중동의 중하위 팀에 두 번이나 졌다. 배부른 프로는 남녀의 구분도 없다. 여자농구는 대만에, 여자 배구는 태국에 져서 짐을 쌌다. 선배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극마크가 싫다

처음부터 망조가 보였다. 스타급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오겠다"고 말은 했지만 얼굴엔 "왜 또 나를 선발했느냐"는 짜증이 가득했다. 일리가 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국내에서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달리 국내 스포츠 스타들은 연예인과 어울리는 것이 관례처럼 됐다. 지방의 한 프로축구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스포츠카를 몰고 서울 강남의 룸살롱까지 경주해 진 사람이 술값을 내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경기장 밖에서 어떤 생활을 하든 운동을 잘하면 상관없다. 그러나 프로선수들은 돈이 걸리지 않은 국제대회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 손해라고 여긴다.

또 국제대회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우물 밖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 외국 선수들이나 국제 심판들은 국내에서처럼 스타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이충희 SBS 농구 해설위원은 "외국 선수들과 몸싸움을 한번 해보고는 그냥 포기하는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김종 한양대 교수는 "한국 프로선수들은 '보호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집단이다. 국제 무대 경쟁력이 부족한데도 국내에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연봉을 수억원씩 받는다. 그렇다면 종합 국제대회에서라도 그 대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 혜택이 우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나온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축구는 이천수와 조원희를 제외하면 전원 병역 미필팀이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은 "프로야구 팀들은 자기 소속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받게 하려고 로비가 치열했다"며 "그러다 보니 전혀 필요 없는 선수도 나왔다. 교체할 선수가 없으니 찬스에서도 대타를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태도도 문제다. 음식 탓, 잠자리 탓하면서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고 호텔 생활로 종종 물의를 일으켰던 귀족 집단 축구는 이번엔 선수촌에 입촌했지만 다른 종목 선수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핌 베어벡 감독은 선수들과도 떨어져 따로 호텔에서 생활했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기형적으로 발전해 왔다.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일수록 경기력을 높이고 명예를 소중히 하며 팬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멋만 부리는 인상이다. 우물 속 대청소가 필요하다.

도하=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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