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못잖은 대선 후보" 오바마 급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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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에 상원의원 배락 오바마(45.민주.일리노이.사진)의 열풍이 불고 있다. 상원의 유일한 흑인 의원인 그가 10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장에 나타나 연설을 하자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 1500여 명은 열광했다. 연설 후엔 오바마를 가로막고서 35만 부 이상 팔린 그의 저서 '대담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을 내밀며 서명해 달라고 졸랐다.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 등은 그 장면을 "마치 록스타의 공연장 같았다"고 묘사했다.

로이터는 "초선으로 정치 경험이 일천한 오바마가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 중 선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예비선거에 출마할 것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도 여론조사에선 벌써 힐러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 오바마에게 왜 열광하나=CSM은 12일 "오바마의 개인적 매력과 대중의 열망이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인종적 편견을 딛고 일어선 젊은 세대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그를 단숨에 유명 인사 대열에 끼게 했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그는 "우스꽝스러운 아프리카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이 상원의원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미국의 이상"이라고 역설, 미국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배락은 아프리카 토속어인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연설에서 "더 이상 민주당.공화당의 나라가 아닌 우리 모두의 미국을 건설하자"고 했다. 그런 그를 미국인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당 전당대회에서 당파성을 내세우지 않는 걸 보고서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고 평가한 것이다. CSM은 "오바마가 남을 비방하는 네거티브 정치를 거부해 온 게 인기 상승의 비결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 오바마, 성공할까=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경우 흑인들은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기 위해 똘똘 뭉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사무실에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흑인 출신 첫 연방대법관으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했던 서굿 마셜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또 흑인 복서로 유명한 무하마드 알리가 사용했던 빨간 글러브도 벽에 걸어 놓고 있다. 여기서 흑인의 기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상원 2년 경력의 오바마에겐 의안 처리와 관련해 흠집을 낼 만한 게 별로 없다. 공화당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이 그를 적극 지원할 정도로 초당적 이미지를 쌓은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가장 큰 약점은 흑인이라는 점일 것이라고 시사전문지 내셔널 저널은 지적했다. "대통령을 하기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대중의 인식도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공화당과 보수층 일각에선 이미 '오바마 흠집내기'를 시작했다. 보수층은 그의 성명 중간에 할아버지.아버지가 쓰던 성(姓)인 '후세인'이란 단어가 들어 있다는 점을 들어 "사담 후세인을 연상시킨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바마 측은 "할아버지가 무슬림이었던 건 맞지만 오바마는 기독교인"이라며 "물려받은 성을 문제삼는 건 치졸한 짓"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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