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서 이기겠다” 미 자신감/소의 중재안 왜 거부했나(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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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시설등 50% 이상 파괴… 더 이상 못버텨”/전후 후세인 지위 보장에 반대 입장/「팔」문제 연계도 “무조건 철수와 달라”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에 제안한 소련의 평화안을 거부함으로써 걸프전쟁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부시 대통령은 소련으로부터 평화안에 대한 통보가 있었음을 밝히면서 그러나 그 내용이 『받아들이기 매우 미흡한 것』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미 의회로부터 추가 전비부담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미 의회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참석했던 의원들은 소련의 중재가 사실상 거부됨으로써 지상전은 시간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상원의 레히의원(민)은 『이라크가 내일 철수한다 해도 미국은 오늘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지상군 투입이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다툼의 상태』라고 백악관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거부가 미국의 예비적인 입장일 뿐 소련과 이라크간의 교섭을 더 기다려보아야 한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앞으로 협상여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무조건 철수밖에는 대안이 없음을 시인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중재를 사실상 거부했다.
미국이 왜 소련의 중재안을 거부했느냐에 대한 이유를 당국자가 공식적으로 설명한 것은 없다. 우선 소련중재안 자체가 소련의 요청으로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고 미국의 이같은 반응은 소련의 타진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으로 볼 때 우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전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지위와 관련된 조건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후세인의 제거가 미국의 목표중 하나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이 목표는 아닐지라도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이 죽었을 경우 결코 울지 않겠다고 한 말과 이라크 국민에게 쿠데타를 촉구한 사실을 지적하며 『사담 후세인에 대한 전후 보장문제를 결코 협상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미국관리들도 후세인의 거취가 협상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라크가 핵시설·화학무기시설을 포함해 전체 전력이 50% 이상 파괴된 시점에 소련의 사실상 무조건 철수안을 미국이 받아들일 경우 부시 대통령이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있음에도 이번 제안을 거부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라크가 전력이 비록 약화됐다해도 아직도 이 지역 최강의 국가로 남아있는한 전후에도 역시 불씨가 남게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이 후세인의 퇴진을 전제하지 않는한 중재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통보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와 결부된 문제로 전쟁책임에 대한 입장도 서로 다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소련안은 이라크에 대해 일체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되어있으나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부자나라인 이라크는 전후 쿠웨이트의 복구에 책임을 져야하며 유엔결의에 이것이 명시되어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아직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팔레스타인문제등의 처리를 놓고 이것이 무조건 철수조항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즉 소련의 제안은 팔레스타인문제와 쿠웨이트로부터의 철수를 묘하게 얽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요소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미국이 지상전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라크가 이번에 선뜻 소련안을 수용할 것 같은 자세를 보이는 것도 더 이상 버티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주말로 지상전에 대비한 병력과 장비의 배치를 끝냈으며 소련의 중재안을 받고도 백악관은 이에 대한 논의보다는 지상전 개시와 관련된 작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의 반응에 앞질러 먼저 거부의사를 표시한데는 이미 계획된 코스에 차질이 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가 소련안을 수용할 경우 연합국 내부는 이를 놓고 지상전을 해야하느니 이 안을 받아들일 것이냐로 분명히 균열이 생길 것도 고려대상이 된 것으로 설명된다.
이제는 이라크가 소련안을 받아들이는 경우라도 가시적인 철수가 즉각 따르지 않는한 지상전은 불가피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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