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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돈」이란 등식 깨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의원 무더기구속을 쇄신의 전기 삼아야
뇌물성 외유사건과 수서사건으로 1주일 사이에 국회의원 8명이 구속되는 유례없는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정치와 돈의 함수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행정부의 비정을 견제·감시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거꾸로 그 직위를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는 혐의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관련의원들과 정치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환멸을 억누르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수뢰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비행을 낳게한 우리 정치 및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눈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이건 뇌물 아닌 정치자금이다』라며 그 행위를 정당한 것인양 항변하는 모습에서 보듯 「정치자금」을 빙자한 의원들의 관행성 부정·부패현상은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몇몇 의원의 뇌물수수만을 놓고 국민들이 분노하고 개탄해 보았자 검은 돈과 관련된 정치와 사회의 풍토쇄신은 백년하청이 될 공산이 짙다.
불행한 사건을 문제제기의 출발점으로 해서 그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근본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는 노력이 나와야 이번 사건의 교훈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정치와 돈은 오래전부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무리 깨끗한 도의정치가 구현된다 해도 현대사회의 구조상 정치자금은 필수부가결하게 되어 있다.
정치,특히 정당정치는 비슷한 생각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그 집단의 지향하는 바를 실현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조직하고 추진하는 정치에는 돈이 윤활유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윤활유는 정치를 있게하는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떳떳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그 윤활유의 출처와 용처가 다같이 흑막에 싸여있고 과도하다는데 있다. 정치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국민 대다수가 그 점을 잘 알면서도 지금까지 정치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냉소하면서도 어물어물 넘긴 것이 아닌가.
검은 돈으로 인식돼온 정치자금의 대종은 역시 정권유지비다. 역대 권위주의 체제의 독재자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검은 돈을 끌어모아 사용한 규모와 수법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한 주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가 사회의 부조리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선거자금의 수요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했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 정권의 전위대로서 출마시킨 정치인들의 당선을 위해서는 관권에 더해 금권이라는 윤활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과 5공시대를 거치면서 선거가 돈잔치로 분탕질됐다는 일반의 인식은 그 점을 잘 방증한다.
여측이 그러하니까 5공시절부터는 일부 야측 인사들도 덩달아 돈싸움에 끼어들게 되어 「선거=돈」이라는 불행한 도식을 낳았다.
정치인에게 선거=돈이라는 등식의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돈을 끌어모으는 수법도 다양해지고 대담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구속의원들은 물론 많은 의원들이 그런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자신과 자파의 정치생명에만 관심을 갖는 현상의 배경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권위주의체제의 퇴조와 함께 돈 안드는 선거와 정치자금 분배의 공정한 기회보장 등을 실현할 방향으로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의원들과 정치인들이 4년 내내 지역구의 온갖 잡사에 신경을 써야 하는 폐단을 막고 정사에 전력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여건에서는 의원들이 상시 지구당 운영체제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구당 운영비,1년에 몇차례씩 하는 당원단합대회,최소한 월 수백만원씩을 써야 하는 경조사 찾아다니기 등에 필요한 거액의 정치자금 염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혁,현재와 같은 세와 연의 정치에서 정책과 노선의 정치로의 일대 개편이 정치권에서 깊이있게 논의되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도 정치인들로 하여금 돈이 덜드는 정치를 할 수 있게끔 지연·혈연·학연 위주의 의식과 정치인들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바라는 의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의원 8명의 수뢰사건은 정치인의 돈은 결국은 국민의 호주머니로부터 나간다는 냉엄한 사실을 교훈으로 남겼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노력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숙제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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