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특허공세에 "업계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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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내업계가 미국 등 선진기업들의 무차별 특허공세에 몸살을 앓고있다.
한 제품에 대해 2∼3개이상의 외국기업들이 잇따라 겹치기 제소를 걸어오는가 하면 수출품 이외의 내수물품에까지 적용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전중재나 협상보다 재판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지고 있다.
개인용컴퓨터(PC)의 경우 국내업체들이 자체생산을 시작한지 10년도 채 안된 지난 88년6월 미국IBM사가 첫 포문을 열었다.
국내8개 업체를 대상으로 자기네 기술 1백60건을 침해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국내업계의 대응조사결과 이중 1건만이 국내 특허청에 등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1건만으로도 내수판매액의 1%를 로열티로 물어야 하게 됐다.
그러나 IBM의 공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 최근 3건의 특허를 국내에 추가등록 시킨 뒤 다시 1% 더 올려줄 것을 요구해오고 있다.
금액으로는 약70억원의 추가부담이 생기게 되는 셈으로 현재 협상중이다.
89년초 이번에는 미TI(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가 전세계30여 유명업체에 특허클레임을 제기하면서 국내PC업체들에도 8건을 제기했고 지난해 7월에는 미국댈라스지방법원에 소송을 내버렸다.
우리 업체가 질 경우에는 3%가량의 로열티부담이 추가될 전망이다.
PC뿐이 아니다.
반도체·VTR·CDP(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 등 전자쪽은 대체로 1∼2건 이상씩은 걸려 있고 반도체와 VTR의 경우 이미 연간 1억달러 가까이씩을 각각 로열티로 물고있다.
매출액대비로는 반도체가 9·4%, VTR가 10%가량에 이르러 국제경쟁력의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
외국기업들의 사전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특허출원·등록건수도 크게 늘어 지난해 특허청에 등록된 외국인특허건수는 5천2백여건으로 전년보다 87%나 증가했다.
이중에는 10여종의 관련기술을 한꺼번에 등록시키는 패키지특허도 상당수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력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점차 단단하고 촘촘한 그물망이 덮여 씌워지고 있는 셈이다.
특허권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일본과 유럽의 각국은 80년대 이후 정부차원에서 관계법령을 계속 강화해 왔다.
기업들도 자사의 기술보호에는 사정을 두지 않아 최근에는 특허소송전문회사까지 생겨나면서 특허분쟁 자체가 하나의 기업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리팩(REFAC)사의 경우 이미 전세계 3천여 기업에 계고장을 보냈고 1천5백개 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정도로 「호전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장점유율 후퇴로 고전하고있는 미국기업들이 특허료로 경영부진을 만회하려 한다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기술력 수준으로, 무역규모는 세계 12위권이지만 이에 걸맞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기업들도 최근에는 특허관리에 관심이 커져 지난80년 특허전담부서를 설치한 업체가 네곳 뿐이었으나 이제는 6백여 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업체가 직원수 5인 미만의 소규모로 급변하는 선진국의 특허정보를 파악하거나 대응자료를 갖추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기술개발로 70년대에는 매출액의 3%정도로 기술도입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10%대로 뛰었고 앞으로는 15∼20%까지 더 오를 전망이며 레이저빔·액정기술 등 일부분야는 이미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기술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있다.
특허도 기술개발이 있고 난 뒤에 가능한 분야인 것이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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