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평생 단 한번 대취했던 조훈현 9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2보 (18~35)]
백 조훈현 9단 : 흑 조치훈 9단

단 한방울도 술을 못마시는 조훈현9단이 평생 딱 한번 술에 취한 일이 있다. 그를 술마시게 한 유일한 인물은 바로 조치훈9단이다.

1980년 그러니까 조훈현이 조치훈과의 기념대국에서 2연패한 그해 12월 31일, 김인9단과 필자, 그리고 조훈현 3인이 관철동 소주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기념대국 때 조치훈의 대국료가 조훈현보다 몇배 많았던 얘기를 하던 중 조훈현이 문득 소주 반잔을 따르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다시 반잔. 그날 일행과 헤어진 조훈현은 사경을 헤매야 했다. 온몸에선 열이 나고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깜깜한 종로의 뒷골목에서 벽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일어서기만 반복했다.

두사람은 어린 시절 같이 일본에 있을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자랐다. 그들은 훗날 한국과 일본을 완벽하게 제패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국내 일인자는 일본 일인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18과 20을 선수한 뒤 曺9단은 곧장 22의 삼삼으로 들어간다. 우상 흑진을 굳혀줄 때부터 생각해둔 시나리오였다. 어제 조훈현9단은 "조치훈을 만나면 승부욕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바둑은 예상외로 평이하게 흐르고 있다.

인터넷 해설을 맡은 양재호9단에게 34는 꼭 두어야하나 하고 물으니 '참고도' 흑1, 3을 보여주며 이 선수가 좀 아프다고 대답한다. 34가 놓이면 A가 급하다. 조치훈은 그러나 A의 씌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35의 큰 곳부터 차지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