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국가시험 "임상실기도 치러야 한다"|치과·한의사 "무더기 불합격"…개선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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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올해 치과의사·한의사 국가시험 무더기 탈락사태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시험제도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될수 있는 자격을 측정하는 시험이 일부 주관식을 출제하는 한의사 시험을 제외하고는 객관식 필답고사만으로 치러지는 것은 무리이며, 선진국의 경우처럼 이론실력을 측정하는 필기시험과 함께 임상실기시험이 병행되어야만 정확하고도 공정한 실력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의사시험 전문기관인 「의사국가시험원」 설립 등 제도개선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번 국가시험에서 치과의사·한의사 분야의 합격률이 예년의 90% 수준에서 각각 54%, 63%로 크게 밑돌자 보사부측은 『그동안 국가시험 무용론이 대두될 정도로 국가시험의 합격률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예상문제집에 수록된 문제를 거의 배제하고 실기응용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많이 출제해 합격률이 낮아진 것』 이라고 밝혔다.
과거의 잘못된 시험풍토를 바로잡고 합격자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문제의 난이도를 높였다는 설명이지만 불합격자들과 학부모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 10개 치과대 재학생대표자협의회(의장 허균행·24·단국대 본과3)는 『6년간의 교육중 유급등 엄격한 규정을 통해 졸업하는 치과대생은 일정수준의 학문적·임상적 자질을 갖추고 있는데도 50%에 가까운 대거탈락은 교육내용에 근거한 시험이 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국가시험에서 일반의사 분야의 경우 평균 70점에 92.7%라는 높은 합격률을 나타냈으나 치과의사·한의사 분야에서는 각각 평균 68점, 63점으로 일반의사의 평균점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격률은 54%, 63%로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치과의사의 경우 무더기 불합격의 원인이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된 특정과목의 과락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Y대를 비롯한 3개 치과대학의 수석졸업자가 탈락하는 등 학교성적과 무관하게 국가시험의 합격·불합격이 결정된 것은 시험문제가 객관성을 유지했다기 보다 「연필 굴리기식」 요행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합격생을 포함한 많은 응시생들이 2백60분내에 3백40문제를 풀어야하는 시험에서 1문항에 주어지는 45초 동안 지문을 읽는 것만도 벅차 종료시간 내에 문제를 다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답안지를 메우기에 급급했다는 주장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경희대의 한 교수는 보사부가 최근 문제가 돼 왔던 일부 수준미달의 외국대학 학위소지자들을 탈락시키기 위해 문제를 어렵게 출제, 이번 시험에 응시한 56명의 외국대학 출신자중 1명만 합격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사전홍보나 유예기간 없이 시행해 수석졸업자를 포함한 상위권 학생들의 대거탈락이라는 파행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치대 유영규 학장은 『사시나 행시같은 경쟁시험이 아니라 의사가 될 수 있는 자격여부를 측정하는 자격시험에서 임상실습 능력평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필기시험의 난이도만으로 합격자의 수를 조절하려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시험경향이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대학교육이 임상의 기능과 기술에 유능한 「참의사」를 배출하는데 역점을 기울이기보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주입식 교육에 치중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시험에 있어 이론필기시험과 더불어 임상실기 평가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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