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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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를 통과한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회안팎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지난 90년대 후반에도 여성계와 유림간의 팽팽한 줄달리기가 있었다.

1995년 동성동본 부부 8쌍이 자신들의 혼인신고 접수를 거부당하자 '불복신청'과 '위헌제청 신청'을 제출했고 이에 서울가정법원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공개변론 과정에서 유림 1백여명이 헌재 대심판정 좌석을 차지해 위력시위를 벌이고, 동성간의 결혼이 열성인자의 아이를 낳게 한다는 '우생학' 논쟁까지 벌어지는 등 이 사건은 곧 전사회적인 관심사로 확대됐다.

수차례의 재판관 평의를 거친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97년 7월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는 민법809조 1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유림의 거센 반발이 계속돼 98년 오늘(11월 07일)에 이르러서야 동성동본 금혼규정 삭제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중국의 유교적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동성동본 금혼의 관행은 근친혼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열성 자손을 예방하자는 것의 원래 취지였지만 조선 현종때 같은 성이면 무조건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성동본 금혼의 발상지라 할만한 중국에서조차도 이미 60여년전부터 이 법안을 철회했고, 같은 씨족간의 결합에 따르는 우생학적 문제 역시 현대사회에서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날 민법 개정안의 통과로 30여만쌍의 동성동본 부부와 그 자녀들이 각종 신분상의 불이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뿌리깊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방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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