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고민­지상전 시기 선택/걸프전 20여일… 결단의 순간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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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공습으로는 시간만 끌어 전황 혼미/아랍동맹국들도 “조기결전”을 촉구
부시 미 대통령이 걸프전쟁을 결심했을 때와 버금갈 심각한 결단을 다시한번 내려야할 순간을 맞고 있다. 걸프전쟁 20일을 넘기면서 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와 같은 공중폭격만으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시간을 끌수록 전황이 다국적군에 불리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조기에 지상전을 전개할 경우 다국적군의 막대한 인명손실을 각오할 수 밖에 없어 부시 대통령은 전쟁시간을 단축할 것이냐,희생자를 감수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체니 국방장관이나 슈워츠코프 현지사령관은 4일의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언제 지상전을 시작할 것인가의 계획이 잡힌바 없다』고 말하면서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일부 보도들을 부인했다.
이와 같은 발언은 미국이 전쟁발발전부터 견지해 오던 입장과 일치한다.
즉 미국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막강한 공군력으로 이라크의 전선 및 후방 지원시설을 파괴,이라크의 지상군이 마비상태에 이르렀을때 지상전을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그래야만 미국이 가장 염려하는 희생자수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막상 전쟁을 시작해놓고 나서 이러한 계획에 차질이 오고 있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은 우선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동맹국들로부터 조기에 전쟁을 끝내달라는 압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국적군 공군이 4만여차례의 출격을 통해 이라크를 공습함으로써 이라크가 초토화되는 장면들과 이라크민간인 피해가 속속보도되면서 아랍권내부에 반미감정이 고조되어 연합국에 가담하고 있는 아랍국가들까지 내부적인 위협을 받고있는 것이다.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이집트의 아브델 메기드 외무장관은 다국적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이집트는 물론 다른 동맹국들의 국민여론이 반대로 돌아서고 있음을 지적하여 전쟁을 3월중순 이전에 끝낼 것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실제 3일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는 10만명의 군중이 반미구호를 외치며 사우디에 파견된 1천2백명의 자국군대를 소환할 것을 요구,하산국왕을 위태롭게하고 있다.
또 공습으로 이라크는 피폐화돼가는 데도 이러한 전황과는 반대로 후세인 대통령은 아랍권내에서 점차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랍대중들은 후세인 대통령이 초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여 지금까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아스라엘에 대한 스커드미사일로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 대통령은 군사적 패배를 정치적 승리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주재 이라크대사는 이같은 인식을 토대로 『이라크는 이미 승리했다』고 공개적인 주장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1∼2주일안에 부시 대통령은 전황의 국면을 바꾸는 또다른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자신은 이런 논리나 주장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내 군사도시를 순회하며 가족들에게 『지상전을 언제 벌일 것인가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 월남전 당시 정치적 판단이 군사작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국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미국으로서는 이번 걸프전쟁 작전에는 정치적 판단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월남전 당시 존슨 미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회의에서 폭격지점까지 결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시 대통령이 현지작전을 현지사령관에게 모두 일임해놓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조기에 지상전을 결심할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슬람종교 축제달인 라마단이 시작되는 3월17일까지는 전쟁을 끝내주기를 희망하는 아랍동맹국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달중순에는 비록 공습효과가 미진하더라도 지상전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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