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때문? 테러 때문?… 필리핀 아세안 + 3 정상회의 내달로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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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필리핀이 11~13일 자국의 휴양지 세부 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를 태풍 때문에 내년 1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아세안 회원국 10개국과 한.중.일, 대화 상대국인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모두 16개국 정상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과 함께 각국별로 양자.다자 회담이 잇따라 개최돼 동아시아 최대의 외교 행사로 손꼽힌다.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측은 8일 "회의가 열릴 세부 섬에 이번 주말께 태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돼 정상회의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준비위는 9일로 잡혔던 외교장관 회담도 연기했다.

필리핀 기상청은 이날 "태풍 우토르가 레이트 섬 1000㎞ 동쪽에서 발생해 세부 섬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주말 태풍 두리안이 중부 알바이 주를 강타해 10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그러나 태풍 때문에 이번 행사를 급작스럽게 연기했다는 데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태풍 때문이 아니라 테러 위협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AFP통신은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테러분자들이 세부의 수돗물에 독극물을 투입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돼 공안 당국이 보안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는 이달 초 두 차례 수돗물.강물에 독극물을 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문에 수십 명이 입원하고, 시내 중심가 마카티 지역의 상점들은 한때 철시했다. 강변에 살던 3000여 명의 주민은 임시주택으로 이주했다. 필리핀 국가정보국의 한 관계자는 "마닐라에서 발생한 테러가 세부에서 자행될 우려가 있다"며 "모든 보안기관들이 총출동해 테러 기도범을 잡아내기 위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들은 "다자간 정상회의가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연기된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필리핀 정부가 태풍 피해에다 독극물 테러설까지 겹쳐 정상회의를 미룬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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