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한푼안낸 「예술귀족」(「예체능입시」를 벗긴다: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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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레슨·사례비 거둬들여 호화생활/대학강사가 10억짜리 저택 구입/실력있어도 돈 안내면 콩쿠르 못나가
민중의 세계를 떠나 귀족층의 정원을 맴도는 예술­. 이로 인해 가난하고 고뇌하는 예술가가 설땅은 없어지고 「예술상인」은 득세한다.
허영과 허상을 좇아 미쳐 돌아가는 일부 부유층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아귀다툼속에서 이들 예술상인에게 예술가와 대학교수의 직위는 단지 치부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건평 80평이 넘는 3층짜리 주택 수백채가 모여 있는 서울 방배동 호화빌라촌.
일부 가정집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고급 외제승용차가 분주하게 오가는 이 동네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촌으로 통한다.
이 부자동네에 재벌이나 병원장·유명변호사 만큼이나 많이 사는 직업군이 「예술가」들이다.
서울 모대학 음대 시간강사 M씨는 30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3년전 40평 아파트로,2년전 80평 아파트로 집을 옮겼고 지난해에는 10억여원을 호가하는 이 동네로 이사왔다.
일개 시간강사인 M씨가 어떻게 호화빌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M씨의 수입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학교에서 받는 강사료가 「껌값」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M씨는 음악계에서 「합격기계」로 통한다. M씨에게 레슨을 받은 학생은 대부분 대학에 합격하기 때문이다.
M씨가 매년 대학입시때 「사례비」조로 챙기는 돈은 적어도 3억∼4억원이 될 것이라는게 주변사람들의 얘기다.
수험생들에 대한 레슨수입이 한달 2천만∼3천만원 벌이는 되고 매년 10여차례 개최되는 각종 콩쿠르에서 참가 학생들로부터 받는 사례비 또한 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밖에 연주회에서 생기는 이익금과 악기판매 등 기타 부수입을 합해보면 M씨의 일년 수입은 10억원에 가깝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더욱이 수입의 90% 이상이 세금한푼 물지않는 「알짜돈」인 것이다.
서울 모여대 음대 J교수는 음악계에서 「레슨의 황제」로 꼽히고 있다.
J교수의 레슨시간은 오전 6시부터 시작돼 오후 10시에 끝난다.
하루 15∼20명의 수험생들에게 1회(30∼40분) 레슨비로 10만∼15만원씩 받고 있으므로 연간 레슨비 수입만 5억원이 넘는다.
J교수에게는 괴상한 버릇이 있다. 「봉투 쌓아두기」가 그것이다.
J교수는 레슨비로 가져오는 돈을 수험생들이 직접 자기 책상위에 가지런히 쌓아놓으라고 지시한다.
저녁무렵이 되면 J교수의 책상에는 돈봉투가 높이 30㎝ 가량의 탑모양으로 쌓이게 된다.
M씨와 J교수의 경우는 분명 극단적인 예일 수 있다.
그러나 불법레슨이 보편화된 상태이므로 음악계 교수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치부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수없이 많다.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사진 등 거의 모든 예능분야에 「돈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다.
이같은 돈바람의 원천은 우리 사회에 수없이 많이 생겨난 벼락부자들의 눈먼 돈에 있으며 맹목에 가까운 자식사랑과 비뚤어진 교육열,그리고 일부 예술인들의 물욕오염이 손발이 맞아 정상적인 윤리기준과 가치관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만화경을 펼쳐내고 있다.
이 「허영의 시장」에서 유일한 잣대는 「돈」이다.
미국에서 살다 몇해전 귀국해 딸을 예능계고교에 보낸 한 주부는 딸에게 플루트를 전공토록할 생각으로 미국에서 4백달러를 주고 스테인리스제품의 플루트를 사왔다.
그러나 고교에 입학하자 학교의 담당교사는 『이런 악기로 무슨 음악을 하느냐』며 최소한 은제 플루트를 사야한다고 권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3백50만원(5천달러)을 주고 은제를 사야했다.
고교3학년이 되자 교사는 『대학시험을 볼려면 은으로는 안되고 금제를 써야한다』며 3천만원짜리 금제 플루트를 사도록 했다.
그러나 교사는 정작 입시가 임박하자 『실력은 됐다,돈만좀 준비하라』고 귀띔했다.
미국식 사고에 젖은 이 주부가 『실력이 있으면 됐지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항변하자 이 교사의 대답은 『그러시면 외국으로 보내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렵습니다』였다.
서울 S대 성악과 3학년에 다니는 딸(21)을 둔 학부모 김모씨(50·여)는 콩쿠르에 한이 맺혀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딸이 몇년째 콩쿠르에 참가할 엄두도 못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딸이 『이미 입상자가 결정돼 있는 대회에 참가해봐야 뭐하느냐. 기만 죽는다』며 『최소한 2천만∼3천만원은 있어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하며 한숨만 쉬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4급 공무원인 김씨로서는 2천만∼3천만원이란 거액을 마련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 모여대 음대생들은 4주동안 유럽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세계적 연주회를 관람하고 세계적 음악가로부터 직접 레슨을 받아본다는 단체여행을 떠났다.
학생 1인당 부담경비는 8백만원선. 물론 형편이 되지않는 학생은 팀에서 제외됐다.
허영에서 시작해서 허영으로 끝나는 예능계의 부정과 비리는 대학입시과정에만 있지 않다. 예능계에 입문할 때부터 시작해 국·중·고교,대학 및 졸업 이후까지 줄곧 계속된다. 이 때문에 몇십년을 시달린 끝에 가까스로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게 되면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더욱 돈놀음에 몰두할 수 밖에 없어 부정과 비리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이규연기자>
▷알림◁
2월1일 본보 『예체능입시』시리즈에 보도된 모여대 J교수는 「교수」가 아닌 「강사」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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