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가지가지 바보들 … 읽다보면 뜨끔할 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바보배

제바스티안 브란트 지음, 노성두 옮김,
안티쿠스, 420쪽, 2만8000원

뒤늦게 소개되는 유럽의 고전이다. 책은 어리석음의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의 바다를 지나 바보들의 천국 '나라고니아'로 항해하는 바보배에 풍경을 읊은 풍자시집이다. 지은이는 15세기에 활약한 독일의 법대 교수로 종교개혁을 앞둔 유럽의 한심한 세태 즉 계급 풍자, 풍기 타락, 어리석음과 신성(神性)의 결핍 등을 꼬집었다.

새로운 유행을 좇는 바보, 바른 조언을 안 듣는 바보, 의처증을 가진 바보, 권력의 종말을 모르는 바보, 저 혼자 옳다는 바보 등 112편의 작품이 실렸으니 어지간한 바보들은 총출연하는 셈이다. 세상은 넓고 바보는 많다고 할까.

"바보라네, 자기는 팔짱 끼고/ 남들을 책망하는 사람은/ 사사건건 손대는 일마다 망쳐놓고/ 남의 일에 참견 안 하고는 못 배기고/ 제 약점은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네"(솔선수범하지 않고 남을 나무라는 바보)

"바보라네, 제가 가장 잘 났다고/자만하며 자위하는 사람은…바보인 줄 뻔히 아는데 도리질을 치니/ 바보가 아니면 무엇이겠나"(저 혼자 옳다는 바보)

"교수들이 올바른 학문을 숭상하기는커녕/ 낮이 먼저일까, 밤이 먼저일까…씨알도 안 먹힐 헛소리로 시간 때워 먹기 일쑤라네/ 학문은 이제 학교에서 팔아먹는 상품이라네"(날림으로 공부하는 바보)

이같은 브란트의 풍자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 예화와 신구약 성경 등 고전을 종횡무진 인용해 오늘날에도 짙은 인문학적 향기를 지닌다. 여기에 알프레드 뒤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판 삽화가 설득력을 높였다. 예를 들어 '성직자가 되려는 바보'편은 바보고깔을 쓴 농부가 농사밑천을 팔아 성직을 사려고 나귀 두 마리를 끌고 도회로 가는 그림이 함께 하는 식이다.

'교회 제단부에서 잡담하는 바보'처럼 현대에서 찾기 힘든 바보들도 나오지만 고전에 치러야 할 대가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