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입맛」에 좌우되는 무용실기(「예체능입시」를 벗긴다: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입시철엔 낯익히기 특강/온라인송금·수표는 사절/시험전에 “정원찼다”는 소문도
올해 전기대 입시에서 S대 무용과(현대무용전공)에 응시했다가 어이없이 낙방한뒤 후기에 지방의 S대에 응시,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K양(18·서울 S여고 3)은 최근 겁없이(?) 무용공부를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K양은 만약 후기에서도 낙방할 경우 아예 무용가의 꿈을 포기하고 최근 잇따라 취업제의가 들어오고 있는 유명 백화점의 안내원으로 일할 생각이다.
K양은 당초 학교무용부의 지도교사와 주위의 권유에 따라 명문E대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북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집안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K양은 무용지도교사와 수차례 상의한 끝에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보다 낮추어 S대를 지원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지도교사에게 소질을 인정받아 보통 중학교때부터 시작하는 다른 학생들보다 다소 늦게 무용을 시작한 K양이었지만 학력고사점수가 2백점을 넘었고 주요 콩쿠르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뜬히 본선에 진출,낮춰 지망한 S대에는 무난히 합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K양의 믿음은 실기시험장에서부터 다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20여명의 동료 수험생들사이에서 『이번에 이 학교는 기본이 3천』이라는 귓속말이 오가고 『내년부터는 교과서가 바뀌기 때문에 필기시험공부가 힘들어져 올해는 뒷거래가 더 심하다더라』는 말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설마」하면서 실기시험에 들어간 K양은 전과정을 실수없이 잘치러 동료수험생들로부터 『넌 틀림없이 합격하겠다』는 부러움을 샀으나 마음 한구석이 못내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합격자발표가 나고 낙방이라는 어이없는 결과에 접한 K양은 충격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들려온 갖가지 뒷소문을 통해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분노에 몸을 떨어야했다.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른 동료 J양(19)과 P양(18)은 도저히 합격할 실력이 아닌데 합격했으며 이들은 각각 4천만원을 「합격보장금」으로 썼다는 소문이었다.
J양은 고3때 부랴부랴 무용을 시작해 9월에는 미용성형수술까지 하면서 약간 힘을 썼으나 지도교사가 『합격을 책임질 수 없으니 다른 교사에게 가보라』고 해 몇몇 교사를 전전했을 정도의 실력.
J양은 실기시험장에서도 다른 수험행들이 동작순서를 외고있는 동안에도 한쪽 구석에서 「쿨쿨」자고 있다가 친구가 『J야! 네 순서야. 일어나』라며 깨워주자 그제서야 부스스 일어나 시험을 치렀지만 거뜬히 합격했다.
또 P양도 평소의 실력을 알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쟤가 어떻게 여기를 지원했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나 결과는 합격이었다.
무용은 세칭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대학이 별로없어 음악보다는 입학사례비가 싸다고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대학의 경우 8천만∼1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외의 대학은 4천만∼5천만원이 보통이고 만약을 위해 뿌리는 「바리케이드」성 사례비도 1천만∼2천만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음악이나 미술과는 달리 동작예술인 무용은 심사위원이 수험생의 얼굴이나 몸동작을 직접 보며 채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에 「얼굴 익히기」행사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입시철이 되면 학원강사나 시간강사들이 브로커역할을 맡아 특강등을 열어 교수와 수험생이 대면할 기회를 마련해주며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다는 것이 정설.
S대 무용과 2학년에 재학중인 L군(20)은 『무용계는 바닥이 좁아 1년에 3∼5차례 있는 전국 규모의 콩쿠르가 바로 「얼굴익히기」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보통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중에서 전공 한 과목과 부전공 한두 과목의 시험을 보는 무용의 레슨비는 대학강사의 경우 과목당 월 20만∼30만원. 1회 1시간30분씩 4회 기준이다.
교수에게 직접 지도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 만큼 레슨비도 그만큼 치솟는다.
의정부의 모여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서울 K대에 진학한 L양(20)은 입시 직전 지망대학 교수에게 3개월간 직접 레슨을 받고 합격한 경우다.
L양은 입시를 앞두고 1주에 3회씩 레슨을 받았는데 1회에 1백만원을 주었고,사례비격인 실기시험 작품비로 따로 5천만원을 주었다. 결국 8천6백만원에 합격한 셈이다.
사례비를 줄때에는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송금,수표나 고액권 신환지폐등은 금기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수개 은행지점을 돌며 1만원권 헌 지폐를 바꾸어 놓았다가 케이크상자등에 담아 전달하는 방법을 쓴다는 얘기다.
무용은 음악이나 미술보다 채점기준이 훨씬 주관적이고 교수마다 나름의 춤사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비리의 소지가 그만큼 더 크다.
무용계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은 음대에 부정입학이 가장 많은 줄 알지만 사실은 무용이 더 심하다』며 『입시때가 되면 어느대학은 이미 돈으로 정원이 다 찼고 어느 대학에는 몇자리가 비어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고 주장했다.
S예고 출신의 낙방생 P양(18)은 친구인 J양(19)이 내신 6등급에 학력고사 1백10점을 받고도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 무사 합격했으며,선배 L양(20)은 내신 10등급에 학력고사 82점을 받고도 1억원을 주고 H대에 합격했다는등 확인은 어려워도 심증은 충분한 사례를 끝없이 열거하고 있다.<김기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