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율화 힘들지만 해야 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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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권이혁 전 문교장관(68)은 (주)녹십자 회장 및 과학기술단체 총 연합 회장을 겸임하면서 틈틈이 회고록도 집필하고 있다.
서울대의대교수·서울대 총장·문교장관·교원대 총장·보사부장관을 지낸 그는 장관퇴임 이듬해인 89년2월 녹십자 회장으로 취임했고 같은 달에 과학기술단체 총 연합 회장에 선출됐다.
『올해엔 회고록을 거의 끝내고 지난 78년에 냈던 보건 학 저서의 개정판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니 서두를 필요도 없고….』
언제나 여유가 중요하다는 그의 평소 소신다운 설명이다.
-지난해 6월엔 큰 행사를 치르셨지요.
▲세계 한민족 과학기술자 종합학술대회였습니다.
과학기술단체 총 연합에서 3년마다 해오던 건데 지난해에는 소련과 중국의 우리과학자들도 처음으로 참석해 더 큰 규모가 됐었지요.
과총회장직은 비상 근이지만 뜻밖에 업무량이 적지 않습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바쁘시겠군요.
▲과총회장은 남북 민간 과학기술교류 추진협의회 위원장을 경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주도로 진행되지만 올해엔 무슨 교류실적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과총 자체행사로는 국내외 과학자들을 모아 봄·가을에 한차례씩 워크숍을 하고 여름엔 심포지엄도 있습니다.
-녹십자 회장의 일도 있지 않습니까.
▲녹십자는 미국·캐나다·독일 등지의 교수들과 연구분야에서 많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공동연구와 관련된 외국손님들과 만나는 게 나의 주요업무지요. 요즘은 녹십자 사무실에서 주로 회고록을 씁니다.
-회고록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내가 남길만한 일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온 경력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에서 지난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했지요.
나도 회고록을 쓸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이 읽고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희를 맞게되는 내년까지는 완성해 출판을 한다는 게 목표입니다.
회고록은 자기 중심으로 미화하기가 쉽지만 나는 사실을 바탕으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공평하게 다루려합니다.
의대교수 시절부터 나와 관련된 기사가 난 스크랩을 계속 해오고 있지만 이걸 봐도 생각 안 나는 일이 많은 게 문제입니다.
돌이켜 보면 일기도 안 쓰고 메모도 해놓지 않은 게 후회됩니다.
-지난 시절 중 어느 때가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마음 편히 연구만 하던 교수시절이 가장 좋았고 그 다음이 서울대 총장시절이었습니다.
내 전공이 예방 학·보건 학이니 정치·경제·사회분야의 일들을 제대로 알 리가 없지요.
총장은 그런 걸 알아야하니까 분야별로 권위 있는 교수를 불러 자문을 청하면 거절하는 분이 없었어요.
-83년부터 3년 간 한 문교부장관직은 어떠했습니까.
▲문교부는 원래 보통교육·국민기초교육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학원문제와 입시제도 등 대학행정이 가장 중요한 형국입니다. 내가 문교부에 들어간 것은 졸업정원제가 실시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졸업정원제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대학의 현실과 맞춰 보려고 애를 썼으나 내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대학의 자율을 강조하셨지요.
▲실제로 해보니 대학의 자율성 확보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학자체가 자치능력이 있어야하는데 우리는 타율적으로 해본 경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말하는 자율은 진짜 자율이 아니라는 비난도 당시 받았었지만 자율은 한꺼번에 이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문교시책이라는 게 행정부내에서의 협조도 받아야하고 대학과도 호흡이 맞아야한다는 점도 느꼈지요.
-다른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까.
▲제일 안타까운 것은 2부제 수업을 해야하는 등의 콩나물 교실이었습니다.
기초교육이 중요한 건데 콩나물 교실에서 전인교육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상당히 애를 섰지만 예산도 부족하고 마음대로 안됐습니다.
지진아를 위한 특수교육의 부족도 안타까웠지요. 어린이들의 2%정도는 지진아라는 게 일반적인 통계입니다. 이런 어린이들은 특수교육을 시켜줘야 하는데 주위에선 우리 실정이 아직 그런 단계에 와있지 않다는 말들을 많이 했지요.
-재임 시에 새로 만든 정책은 없었습니까.
▲학력고사에 주관식을 도입키로 방침만 세워놓고 시행은 못했지요.
내가 나간 다음해에 한번시행하고는 도로 없어져 버리더군요.
-보사부장관 시절은 어떠했습니까.
▲부임하자마자 공해 콩나물과 가짜 참기름 사건이 터져 곤욕을 치렀지요. 부정식품은 일종의 집단 살인이니까 앞으로도 주된 척결과제로 삼아야지요.
농어촌 의료보험을 실천에 옮기는 책임도 내가 맡았었습니다.
의료보험에서 여러 문제가 파생된다는 걸 알게됐는데 6공 초반기 대폭 개각으로 9개월만에 퇴임하고 말았지요.
-회고록에서 자세히 다뤄질 문제군요.
요즘의 사회현상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일하려는 정신이 쇠퇴한 것이 가장 문제로 보입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상황인데 뭔가 오판들을 하고있는 것 같아요.
책임감과 준법정신이 희박해 진 것도 문제고요.
인간성 회복이란 말들을 쓰지만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책임감과 준법정신이 인간성의바탕입니다.
-주례를 많이 서신다면서요.
▲대학재직시절의 제자들이 찾아오면 거절할 수 없어 요즘도 한 달에 10여 차례씩 주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1천 건은 넘게 주례를 섰지요.
-운동은 어떤걸 하십니까.
▲68년부터 골프를 시작했었지만 취미가 별로 없었고 요즘은 전혀 안 합니다. 따로 운동을 안 해도 건강하니 다행이지요.
나는 건강이란 주위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정신건강이 육체적 건강보다 중요하지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정신건강의 첩경입니다. 뭐든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요즘의 풍조는 2중으로 나쁜 거지요.
교육의 근본도 모든 것을 여유있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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