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통일운동 앞길 험난/「범민련」간부 2명 구속 파문(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남측 본부결성 전망 불투명/내달 남북 고위회담도 우려
24일 「범민족연합 남측본부준비위」 결성을 주도해온 이창복 전민련의장과 김희택 사무처장 등 2명이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구속되고 김희선 서울민협의장과 권형택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국장 등이 수배되자 재야운동권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전민련은 이의장등이 구속되자 즉각 성명을 내고 『민간주도의 통일운동을 말살해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의 기만성을 은폐하고 전민련으로 상징되는 민족민주운동에 쐐기를 박으려는 기도』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으나 앞으로 미칠 여파등을 고려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재야운동권에서는 이의장등의 구속과 수배가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운동권의 핵심세력을 묶어두려는 사전포석일 수도 있다고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의장등의 혐의 내용은 일단 북한대표와 접촉해 23일 범민련 남측본부준비위를 결성했다는 것이다.
남·북·해외동포의 민간통일운동단체인 범민련의 결성논의는 지난해 8월15일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북한과 해외동포들만이 참가해 열린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 처음 제기됐었다.
북한과 해외동포 대표들은 당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키로 합의했고 이에 대해 남측에서도 범민족적인 통일운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19일부터 이틀간 독일 베를린에서는 북의 전금철,해외동포대표,남측 대표인 조용술·이해학 목사와 조성우씨 등이 참가한 가운데 3자회담이 열려 범민련을 결성키로 다시 합의했다.
회담에서는 95년을 통일원년으로 설정하고 남과 북,해외 등 세곳에 1명씩의 의장을 선출하며 본부를 베를린에 둔다는 내용등을 결정했다.
이들은 또 91년에는 6월25일을 전후해 서울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지대화를 위한 서울국제회의」를 열 것과 8월15일에 제2차 범민족서울대회를 개최키로 했다고 발표했었다.
비밀출국해 베를린회담에 참가했던 남측대표 3명은 지난해 11월30일 귀국 즉시 공항에서 연행돼 구속됐다.
◇남측본부=베를린 3자회담에 따라 범민련 남측본부를 결성하는 과정에서는 재야운동권내부에서 상당한 이견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통일운동보다는 민주화투쟁과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됐다는 것.
그러나 이미 합의된 내용이라는 명분론에다 문익환 목사가 석방된 뒤 전국을 순회하며 행한 「방북보고대회」의 성과에 고무돼 남측본부를 결성키로 대세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3일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준비위에는 전민련과 전농·전교조·전대협·노운협 등 대부분의 운동단체가 참가했고 문익환 목사가 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전망=재야운동권은 이미 남측본부준비위가 결성됐고 수많은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구속이 범민련의 결성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장등 4명은 베를린대회에 참가했다 구속된 이해학 목사등과 함께 지금까지의 통일운동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
또 준비위 과정에서부터 정부의 강력한 제재가 시작돼 범민련 남측본부가 결성될 수 있느냐도 불투명하게 됐다.
따라서 2월 일본 동경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해외동포의 범민련의장단 회담이나 6월25일과 8월15일 서울에서 열리기로 합의된 「반핵국제회의」「2차 범민족대회」 등도 실현에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베를린대회에 참가했던 남측대표 3명이 구속된 뒤 북측의 강력한 항의로 제3차 고위급 회담이 무산위기에 처했던 점을 고려할때 이의장등의 구속은 다음달 24일로 예정된 제4차 고위급회담의 개최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김종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