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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국호의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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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함과 같아야 한다고 노자(老子)는 말했다. 작은 생선을 이리저리 뒤집고 칼질을 해대면 생선은 상한다. 불 세기를 적절히 조정하고 간단하게 조미하는 데 그쳐야 작은 생선을 요리할 수 있다. 노자의 이 말은 사실 무위(無爲)의 묘체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치국론(治國論)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에서 국가 운영의 방도를 말한 사람이 주승(朱升)이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이 왕업을 이루기 직전에 만난 주승은 지금의 장시(江西)에 학관을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던 숨은 선비였다. 장시성 일대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주승을 만난 주원장은 대업을 이루기 위한 가르침을 청했다.

그의 대답은 간략했다. "성벽을 높게 세우고(高築墻), 식량을 널리 모으고(廣積糧), 천천히 왕을 칭하라(緩稱王)"는 충고였다. 주원장은 이 가르침의 요체를 재빠르게 터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명조를 건국했다.

성벽을 높게 세우는 일은 국가의 안위, 요즘 말로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말일 게다. 식량을 모으는 일은 민생의 안정이다. 다음 것은 명분에 휘둘리지 말고 실재를 중시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역대 중국 정치권의 치세를 위한 방략으로 널리 쓰이는 명구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사회주의 새 중국을 건국한 뒤 이 말을 코디했다. "방공호를 깊이 파고, 널리 식량을 모으고, 패권을 말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의 패권 앞에서 위기감을 느낀 마오가 전통에서 찾아낸 지혜다.

빼어난 단순성, 고도의 집중성이 노자와 주승이 말하고자 하는 치국론의 핵심이다. 이 전통 때문인지 중국은 요즘 잘나간다. 최근에는 중앙텔레비전(CCTV)이 '대국의 굴기'란 시리즈를 내보내면서 대국의 꿈(大國夢)에 젖어 있다. 경제는 빨리 성장하고 민생은 큰 무리 없이 안정을 유지한다. 연구개발(R&D) 투자는 일본을 앞질러 미국에 이어 2위다. 국방과 경제에 집중하는 단순하면서도 선 굵은 중국의 국가 어젠다 덕분이다.

한국이 생선이라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상태일 듯싶다. 이념 논쟁에, 과거사 분란에 정신 차릴 겨를이 없었다. 축성(築城)은 고사하고 황성 옛터처럼 허물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일 테다. 대통령은 외국 순방에 나가서도 국내를 향해 'e-메일 정치'를 하는 상황이다. 관념과 지식은 충만해 보이지만 결국 그를 조율하고 아우르는 지혜가 보이질 않아 걱정이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