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대가 치른 북방외교/한소 경협 어떻게 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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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전반 어려운때 30억불은 과중/국민부담 느는데 밀실협의도 문제
한소간 현안으로 남아있던 경제협력규모가 30억달러로 타결됐다.
양국 정부는 지난 17,18일 서울에서 열렸던 제2차 한소 정부대표단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현금차관(정부지불보증 은행차관) 10억달러,소비재수출전대차관(정부지불보증 연불수출) 15억달러,플랜트연불수출 5억달러를 한국측이 향후 3년간 제공키로 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22일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이밖에 경제·과학기술협력공동위원회 설치를 합의하고 어업협정에 가서명함으로써 양국 경제협력문제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경제협력문제는 작년 9월30일 있었던 한소 수교와 맞물렸던 것으로 우리측이 가부간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북방외교 결실의 대가로 지불해야 될 비용인 셈이다.
그러나 수출부진으로 무역흑자국이 적자국으로 반전되고 특히 걸프전쟁으로 경제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30억달러는 너무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정부는 3년간에 걸쳐 30억달러가 제공되고 대부분이 우리 기업의 플랜트 및 상품수출의 대불용이기 때문에 규모가 결코 큰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소련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보아 대금결제가 국제관행보다 훨씬 늦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결국 국민세금에서 부담해야 할 몫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또 구체적 자금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금융계쪽에서 나오고 있다. 현금차관의 경우 어차피 해외에서 빌려다 다시 꾸어주는 형식으로 해야하는데 최근 국제금리 상승추세를 감안할때 금리부담을 궁극적으로는 소련측에 넘긴다 하더라도 상당기간은 우리측이 대신 부담해야 할 것이 뻔하다.
이같은 우려는 소련측의 경제사정으로 볼 때 거의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개혁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기간은 꽤 걸릴 것이며 더구나 현재의 상황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비관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더욱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경우를 생각하면 「도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북방정책에 적절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양해하더라도 지금 우리처지가 도박까지 할 여유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다만 장기적 안목에서 소련의 무진장한 자원개발과 시장개척,그리고 소련의 첨단과학기술 도입이라는 차원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충분히 있다.
정부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같은 시각에서고 또 남북대화등 통일정책에 있어서 소련측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한 불가피한 사정도 이해할만 하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소 경제외교가 그 방법 및 속도에 있어서 적절한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한소 경제외교를 얼마만큼 국익에 충실하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이번 한소 경제협력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의 외교는 철저히 주고받기에 기초를 두고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한소 경제외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태도가 과연 바람직했느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경제문제를 정부내에서 쉬쉬하면서 철저히 비공개로 추진한 것이다.
작년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후 정부는 대소 경제협력문제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 언론에서 25억∼30억달러의 경제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을때 펄펄뛰며 부인하기에 급급했었다. 심지어 관계부처 담당자들을 불러 조사까지 한 일이 있고보면 정부의 협상전략이 밀폐·경직된 속에서 몇몇에 의해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정으로 볼 때 앞으로 현금차관에 대한 국회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큰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국민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은 국민여론 수렴과정에서 공개적인 설득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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