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와 외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의원들의 외유가 또 말썽이 되었다. 걸프전쟁으로 온 세계가 전쟁의 귀추를 지켜보며 전전긍긍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전국민이 에너지절약운동을 펼치며 자숙하고 있는데 외유를 즐긴 국회의원들이 지난 주말 쇼핑가방을 든채 속속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여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부부동반으로 로마,빈 등 관광지를 「유람」한 의원 10여명이 서너개씩의 트렁크에 양주꾸러미까지 들고 들어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회의원들이 해외나들이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의원외교」라는 명분으로 해외나들이를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것을 단순한 「외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의 해외활동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비난을 받을 소지가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해외활동은 국내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관리들의 말을 들으면 이들은 현지사정을 전혀 무시하고 불쑥 찾아오면서 마중나가는 공관원의 급수와 인원수를 따지기가 일쑤다. 물론 이들을 안내하여 관광지를 돌고 쇼핑까지 시키는 것은 해외공관의 주요업무중 하나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면 철새떼처럼 몰려드는 의원들 뒤치다꺼리에 바빠 관광지가 있는 대부분의 공관은 업무가 마비된다.
국회의원들의 해외나들이는 국가에서 여비를 지불하는 공식여행과 개별적으로 초청자 또는 자기부담으로 하는 비공식 여행이 있다.
물론 여기서 비공식이라는 것은 국회차원에서 계획,실행되고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 개인적인 볼일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의원들은 「적당한 건」을 만들어 국비를 받아 나가는게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일부 의원들은 소속상임위의 유관 기관장들에게 해외출장을 알려 별도의 여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번에 말썽을 빚은 의원들도 대부분 7백만원 가량의 여비를 국고에서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그래도 세비가 적다고 기습 인상했다가 여론에 밀려 반납하는 소동까지 벌인 국회의원들이 전쟁중 그것도 부부동반 외유로 관광과 쇼핑을 즐겼다면 누가 그들의 말을 믿으려할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