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숙영씨 댁 약과|"생강 넣고"상큼한 맛"내는 게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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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핵가족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인 우리사회에서 한 지붕 아래 부모와 결혼한 두 아들 내외가 어울려 사는집을 찾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서울 은평구 녹반동83의17 3층집은 바로 그 드문 집중의 하나다.
대륙화학 부회장인 송시영씨(62)소유의 이 집은1층에는 작년9월 결혼한 둘째 아들 내외가,2층에는 송씨 내외가,3층에는 결혼한지 5년 되는 큰아들 내외가 살고 있다.
2층 복도 끝에 자리잡은 이 댁 주방은 시어머니인 이숙영씨(60)와 큰 며느리 김소현씨(32·배화전문대 교수 전통 복식 학), 둘째 며느리 조은정씨(27)가 함께 음식을 만들며 정다운 가족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이씨는 결혼 전 국교교사를 지내 당시로는「신식 며느리」였으나 시집온 직후 저고리 짓기·버선 만들기를 척척 해낸것은 물론, 결혼한달 만에 맞은 시숙의 생일 상을 혼자서 거뜬히 차려내 시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씨의 빼어난 솜씨는 꾸준한 노력에 의해갈고 닦아진 것.
친정어머니의 야무진 살림솜씨를 늘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던 그는 약혼과 함께 학교를 사직하고 신문광고에 실린 서울숙녀학원을 찾아 나서 6개월 간「짭잘한」신부수업을 받으면서「제2의 인생 기」를 대비했다. 이때 배웠던 한국요리, 누비바지·저고리 짓기, Y셔츠 만들기 등 강의내용을 적어둔 노트를 그는 지금껏 가지고 있다.
이 댁의 트레이드마크로 정평이 나 있는 음식은 약과. 설날·크리스마스를 비롯한 명절때면 은박지로 만들어진 1회용 도시락을 1백 개는 넘게 사둬야 한다.
가족들이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약과선물을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리 장이 되고 두 며느리는 조수가 돼 약과를 만드는데,1백여 개를 포장하려면 최소한 다섯 차례는 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한다.
밀가루 15컵에 연실유 2컵을 부어 손으로 비빈 후 얼개미로 내린다. 다진 생강 1컵과 계피가루 2술·소주 반 컵·계란 1개를 풀어 골고루 섞은 다음 이것을 밀가루에 섞는다.
설탕을 약간 넣고 엿을 중탕해 말랑한 상태가 되도록 반죽한 뒤 밤톨크기 정도로 떼어내 틀에 박아낸다. 중 불에 기름을 올러 놓고 이것을 서서히 튀겨낸 후 물엿에 담갔다가 꺼내는 것이 바로 이 댁 약과의 조리법.
생강 다진 것을 넣어 상큼한 맛을 더한것이 이 집 솜씨의 비결이다. 특히 씹을때 딱딱한 여느 약과와는 달리 보숭보숭한 감촉이 먹는 이를 더욱、흡족하게 해주고 있다. 이 맛은『반죽의 노하우』라고 큰며느리인 김씨가 설명해준다.
이대대학원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중인 김씨는 물론 첼로를 전공한 조씨에게도 처녀시절부터 해오던 후학지도를 계속하게 할 정도로 결혼에 의해 며느리들의 생활이 달라지지 않게 배려하고 있는 것도 이씨의 숨은 노력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는다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과를 만들면서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기름 온도가 너무 뜨거워 약과를 태우는 실수를 함께 저지르면서 서먹하던 동서끼리도 금방 가슴이 맞닿는 느낌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김씨의 말은 『가정문화는 이어져 내러가기도 하지만 창조해 가는 것도 있다』는 이씨의 지론을 수긍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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