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조훈현과 조치훈, 외나무다리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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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보 (1~17)]
백 조훈현 9단 : 흑 조치훈 9단

어제, 그러니까 10월15일, 조훈현9단과 조치훈9단은 온종일 함께 대국을 검토했다. 평생을 라이벌로 살아온 두 사람은 이날 역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가운데 이세돌9단이 앉아 명랑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16일 아침, 두 기사는 정식으로 마주 앉았다. 벌써 23년 전이던가. 조치훈9단이 일본의 명인이 되어 금의환향했던 1980년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신문마다 톱기사로 趙9단의 성공을 다뤘다. 조남철9단의 손을 잡고 일본행 비행기 트랩에 오르던 꼬마 조치훈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그때 조훈현9단은 가슴앓이를 했다. 군에 입대하기 위해 돌아온 한국 바둑계는 일본에 비해 너무도 초라했다. 曺9단은 국내 모든 타이틀을 휩쓰는 전관왕에 올랐으나 세상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曺9단은 때마침 금의환향한 조치훈과의 기념대국에서 두번 잇따라 졌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말했다. "실제로는 두점 바둑 아냐?"

그 후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을 거듭했지만 조훈현은 그때의 아픔을 결코 잊지 못한다.

돌을 가리니 조치훈의 흑. 검게 탄 얼굴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마치 풍우에 씻긴 바위를 연상시킨다. 백6에 대해 '참고도' 흑1로 평범하게 받는 것은 백4까지 우변 백 모양이 활달해진다.

이것은 백의 주문이라 보고 趙9단은 7로 협공했고 그 수를 본 조훈현은 곧바로 8로 씌워 16까지 밀어붙였다. 曺9단은 7과 17이 중복의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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