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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회복을 위한 캠페인/사람답게 사는 사회: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위험수위” 저질대중문화/외설·폭력물 범람… 청소년 자극/낯뜨거운 TV프로·광고 거침없이 방영
대중문화의 역기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가 아니다.
돈벌이를 앞세운 악화들이 설쳐대는 통에 건전한 오락의 제공을 목적으로 한 양화들이 설땅을 잃고 있다.
청소년들로 가득 찬 극장안 스크린에는 피가 낭자하고,말도 안되는 내용의 포르노성 영화가 양산되는가 하면 낯뜨거운 문구가 박힌 영화포스터가 거리에 즐비하게 나붙어 청소년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안방을 점령한지 오래인 TV·비디오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10대들의 괴성이 요란한 TV쇼는 어지러운 조명과 선정적인 춤이 어울려 밤무대 광경이나 진배없다.
전국 2만여 곳을 헤아린다는 비디오테이프 가게에는 『10시부터 깊은 밤』이니 『매춘 스케줄』이니 하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제목의 애로물들이 가득 꽂혀 있다. 가게 한켠에는 철모르는 아동들이 줄지어 와 황당무계한 폭력장면이 가득한 일본비디오 『프레시 맨』『마스크 맨』따위를 찾는다.
청소년층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홍콩·미국의 폭력영화를 보면 이들 영화가 얼마나 청소년들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서울 YMCA조사에 따르면 홍콩영화 『첩혈쌍웅』의 경우 24.3%가 폭력장면이었고 총격횟수 5백85회로 1백15명의 등장인물이 죽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미국영화 『로보캅』은 29.1%가 폭력장면이었으며 각종 폭발물이 터지는 횟수가 23회나 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Y의 또다른 표본조사에 의하면 서울지역 고등학교 남학생중 『로보캅』은 72%가,『첩혈쌍웅』은 63%가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두가지 손놀림은 우리 대중문화의 상업주의와 퇴폐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하나는 가수 태진아의 히트곡 『거울도 안보는 여자』중의 한 대목.
『오늘밤 나하고 「우우우우(?)」 사랑할거야』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신음하는 듯한 괴성을 내지르는 것을 철모르는 아이들이 아무곳에서나 흉내내는 장면을 보면 민망하기까지 하다.
부담없이 즐겨야할 대중음악이지만 노골적으로 섹스를 암시하는 방법으로 인기를 얻으려하는 발상부터가 크나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몸에 밴 듯한 황금만능주의다.
어린이들이 TV코미디쇼를 보고 보이는 반응에 부모들과 교육자들은 혀를 내두르곤 한다. 무슨 일이든 아이들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하고 돈을 표시하면서 「이게 짭짤합니까」라고 물어오기 때문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 의식 깊숙히 파고드는 가요와 TV프로의 영향에서 노력·땀의 의미를 되새겨볼 기회는 무색해지고 만다.
최근 방송위원회로부터 두번이나 「주의」를 받은 MBC라디오 「싱글벙글쇼」의 예를 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감지할 수 있다.
청취자가 전화로 신혼시절의 일화를 소개하는 시간은 종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내용이 버젓이 방송됐다.
『…단추 하나하나 열면서 벗겨내는 거예요』『…뭔가 흡족하게 해주지 못하니까』『한복을 입으면 한복속으로 막 들어와요』… 부끄러운줄 모르고 포르노와 다름없는 내용을 말하는 청취자나 아무 거리낌도 없어 적나라하게 방송전파로 내보내는 제작자나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가고 있는 실정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이 퇴폐와 상업성이 뒤섞여 안방에 무차별 파상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으론 방송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심의에서 방영불가 판정을 받은 한 TV광고는 남자모델이 주유기구를 여자 모델의 자동차 주유구에 넣는 장면을 부각시켜 성적 상상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TV 드라마들도 정상적인 인간관계로는 흥미를 끌지못하고 뭔가 뒤틀린 상황을 억지로 조장해 거센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코미디물은 폭력조직·걸인·이상 성격의 가정 등 극한 상황에서 과잉행동이 있어야만 대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관행이 되고 있다.
대중 매체가 직접적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달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에 편승해 기획자들로부터 대중문화 보급자들까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뛰어들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감시·비판적 시각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점차 줄기는 커녕 오히려 주조가 되어가고 있다. 약간의 규제나 적당한 제재를 받는 것이 오히려 홍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이에 더해 대중문화에 대한 무책임한 폄하는 또다른 저질·퇴폐의 재생산구조를 낳는다. 독창적인 창작으로 고급문화의 맥을 잇는 예술가들이 약간의 대중적 취향만 보여도 상업성에 영합한 타락으로 치부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대중문화는 진정한 문화창달이나 정서함양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제 대중문화를 이대로 방기해선 안되겠다.<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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