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못하고는 공부 습관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최근 KBS 프로인 '아침 마당'에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토론 주제가 '아이 성적표=엄마 성적표' 였는데, 제목만으로도 어머니들의 눈길을 확 잡아당겼을 것이다.
자녀가 공부를 만족스럽게 하면야 이 제목을 본 어머니의 기분이 나쁠 리 없다. 하지만 성적이 중·상위권 밑이라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애가 평균 50점이니 엄마인 나도 50점짜리란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송 출연 후 사교육을 옹호하는 것 같은 얘기를 한 나에게 비판적인 댓글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댓글이 무서워 내키지 않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 자녀 성적은 개인자질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다시 말하면 이렇다. "KBS 아침마당의 토론 주제였던 '아이 성적표=엄마 성적표'란 등식은 정답이다."
과거엔 아이 성적은 개인의 자질과 비례하는 면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가정에서 '될아이는 진학시키고, 안될 아이는 일찌감치 직업 전선으로 보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 성적은 개인 자질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개인 자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부모의 학력·경제력에 열성까지 합쳐져 자녀의 능력이 결정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이 높고, 전업 주부의 자녀가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 성적을 좌우하는 이유는 '높은 사교육 의존도'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고학력과 열성을 갖춘 부모가 학습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자녀를 밀착 지도하기 때문에 학업성취가 높다는 점이다.

필자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을 출간했을 때 다수의 독자가 대치동 어머니에 관해 6~7곳의 학원으로 자녀를 끌고 다니며 혹사시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다는 대치동.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자녀를 키운 어머니들은 아이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만약 자녀를 엄마 뜻대로 끌고 다니며 사교육을 시켰다면 그 아이들은 결코 최상위권이 될 수가 없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초등 6학년, 늦어도 중학교 1학년까지는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다니더라도 그 이상은 엄마 뜻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 자녀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자
지금 고교 1학년인 K군은 늘 전교 5등 안에 들며 수학은 항상 100점이다. 이 학생은 방학 때만 수학 단과학원에서 심화학습을 하는 것 말고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비교적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K군의 엄마는 5세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시켰다. "수학을 아주 재미있어 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도 매우 빨랐어요. 중학교 1학년이 되니까 학습지 회사 커리큘럼으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그만 뒀지요. 꼬박 10년을 한 학습지로 공부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저절로 2~3년 선행학습을 한 셈이지요."K군 어머니의 말이다.
당시 월 학습지 비용은 2만원이었다. 가장 인기가 있다는 학습지를 선택했는데, 당시 K군과 함께 학습지를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1년 이내에 그만 두었거나 다른 학습지로 옮겼다. K군 어머니는 "학습지가 싸다고 해서 얕보고, 매일 한 장씩 하는 것만으로 본전 뽑는 셈으로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K군 어머니는 2만 원짜리 학습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게끔 지도했고, 오답 체크는 엄마가 꼭했다. "방문 학습지 교사는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한다"는게 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대치동 D중학교 우등생 T양의 어머니 사례도 귀 기울일만하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T양의 어머니는 '학습 기초 습관 바로 잡기'에 집중했다.
교육은 7세부터 시작됐다. '글씨 또박또박 쓰기' '매일 방 정리하기' '매일 하루 계획표 작성하기'등을 초등 저학년 때까지 엄마가 매일 점검하면서 자녀에게 각인시켰다. 글씨 쓰기를 통해 집중력·인내심·정서적 안정감 등을 키웠고, 방정리와 계획표 짜기를 통해 자기관리·시간 관리를 익히게 했다.

T양은 현재 전교 1~2%에 드는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학생은 시험 때만 되면 시키지 않아도 책상에 3주 스케줄 표를 붙이고, 공부와 휴식 시간을 정확히 구분했다.
또한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원·학습지 등을 엄마가 관리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사교육 프로그램까지도 학생이 스스로 짜고 있다. 즉, 자신의 성향과 성적에 맞는 학원과 강사를 수소문해서 알아내고, 필요한 부분은 동영상 강의를 활용해 공부하고 있다.

02-560-8500
김은실 교육전문작가, 교육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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