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테너 목소리 다시 듣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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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배재철씨(左)가 그를 돕는 데 앞장서 온 프로듀서 와지마 도타로와 포즈를 취했다.

독일 남부 자브리켄에 체류 중인 테너 배재철(37)씨는 최근 일본에서 배달돼 온 한장의 음반에 또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첫 독집 앨범이기도 한 이 음반은 배씨의 재능과 음악을 사랑하는 일본 팬들이 제작해 발매한 것이었다.

하지만 배씨는 지금은 노래를 할 수 없다. 1990년대 유럽의 각종 성악대회를 휩쓸었던 그였지만 하루아침에 생명과도 같은 성대신경을 잘라내야 했던 비운의 성악가다. 사연은 이랬다.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 활동 중이던 배씨는 지난해 9월 자브리켄 가극장에서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 출연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본인도 몰랐던 갑상선 질환 때문이었다.

갑상선을 잘라내면서 성대와 연결된 중요 신경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노래는커녕 일상적인 의사소통조차 힘들 정도가 됐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배씨의 일본 팬들이 그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자는 운동에 나섰다. 2003년 일본 공연 때 배씨의 노래에 매료된 프로듀서 와지마 도타로(輪嶋東太郞)가 수소문한 결과 성대복원 수술을 고안해 낸 세계적 권위자가 일본인 잇시키 노부히코(一色信彦) 박사인 사실을 알아냈다. 와지마는 자선공연 수익금과 팬들의 후원금으로 올 4월 말 배씨를 일본으로 불러 잇시키 박사로부터 수술을 받도록 주선했다.

수술 경과가 좋아 배씨는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아직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만큼의 성량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달부터 성대 수술을 받은 사람을 위한 전문 재활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들이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주니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답하는 길은 하루 속히 무대에 올라 팬들에 노래를 선사하는 것이죠."

이달 초 자비로 배씨의 CD 3000장을 제작한 와지마는 배씨를 '아시아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테너'로 높게 평가한다.

그는 "배씨가 일본 팬들에게 준 감동에 보답했을 뿐"이라며 "첫 음반은 내가 만들었지만 빨리 회복돼 그가 녹음한 후속 음반을 들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배씨는 1990년 이탈리아로 유학간 뒤 빌바오 콩쿠르, 도밍고 오페라리아, 베르디 콩쿠르 등 유럽의 유수 성악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그 뒤 이탈리아와 스페인, 헝가리 등을 거쳐 최근에는 독일을 근거지로 활동해왔다.

푸치니의 '아무도 잠들면 안된다'는 노래 제목을 타이틀로 한 배씨의 이번 음반에는 오페라 곡들과 함께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 '뱃노래' 등이 수록돼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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