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경숙-이영자씨|40년대 음식 맛있는 조리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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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음식을 통해 한 시대의 생활과 정신이 함께 전달된다.
이영자씨(59·한우석 본부대사부인·서울 서초구 반포동720의33)의 3대에 걸친 대물림 조림솜씨는 맛도 뛰어나지만「정신의 계승」이란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이씨의 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제1공화국 당시 정부각료를 지낸 이근직씨(63년 작고)의 3남3여중 맏딸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호랑이 어머니」인 이경숙 여사(79) 밑에서 단단히 조리훈련을 받은 것.
영자씨는 친정에서 새해인사를 오는 손님들에게 수백 그릇의 떡국을 대접해야 할 때도 국물이 식었다거나 터진 만두가 있다든지, 떡국물 색깔이 뿌옇게 변해있으면 어머니는『이건 개 죽』이라고 호통치며 내버렸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국물·만두·떡을 모두 따로 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마다 금방금방 끓여 내오는 손빠른 조리법은 그가 후일 아프리카·인도네시아·네덜란드·프랑스 등지에서 대사로 활동한 남편을 따라다니며「현지 교민들에게 수백 그릇의 설날 떡국을 대접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가 즐겨 식탁에 올리는 음식은 40년대 음식들. 오랜 외국생활의 여파로 자칫 허황된 분위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세 딸(29, 24, 22세)에게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들을 맛보게 함으로써「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바로 보고 살라」는 그의 생활신조를 말없이 체득케 하고 있다.
수제비·무전·우엉산적들은 그 대표적 음식들. 특히 무전이나 우엉산적은 먹을 것이 풍요로워진 요즘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음식이기도 하다.
무전은 작은 무를 골라 깨끗이 씻은 후 반을 잘라 찜통에 넣고 80∼90%가 익을 정도로 찐다. 다음에 보통 생선전 크기만큼 무를 얇게 떠서 계란2개와 밀가루를 약간 되게 풀어 옷을 입힌 후 프라이팬에서 전을 부친다. 이때 밀가루를 푸는 물은 찜통에 있는 물을 이용한다.
우엉산적은 우엉을 10cm크기로 잘라 찜통에 찐 다음 길이로 4∼6등분해둔다. 파·쇠고기도 우엉과 같은 크기로 썰어둔다. 익은 김치의 잎사귀 부분은 따로 떼고 줄기만을 골라 우엉의 크기와 같게 썬 후 준비한 재료들을 불고기 양념에 함께 버무려 꼬챙이에 차례로 낀다. 이것을 밀가루·계란을 풀어놓은 것에 옷을 입힌 후 산적으로 굽는다.
대물림 솜씨에서 어머니 대와 달라진 것은 우엉산적에서의 김치부분. 당초 이경숙씨는 날배추를 절인 것을 이용했으나, 영자씨는 겨울에는 김장김치를 많이 담가 익은 김치가 많다는데 착안, 양념 맛이 배어있는 김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영자씨의 솜씨는 세 딸에게 모두 이어져 3대의대물림이 됐다. 지난 7월 주불대사를 끝내고 본부대사로 돌아올 때까지 대사관파티가 열렸다 하면 세 딸이 모두「보조」로 나설 정도.
파리 콩세바투아 음악학교에서 하프를 전공하고 있는 막내 한준영씨(22)는『무전이나 우엉산적 등 40년대 음식은 엄마·아빠의 노스탤지어(향수)가 깃들인 음식』이라면서『우리가 태어나지 않은 시대에 이런 음식을 먹고 행복해했었구나 하는 것을 먹을 때마다. 되새기게 한다』고 말했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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