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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AI 시대의 도래와 스승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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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고 노래하곤 했다. 스승은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넘어서 삶의 모범이 되고 학생들을 자식처럼 교육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영어지식보다, 감기로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나를 양호선생님께 데리고 가서 ‘우리 아들인데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해주신 것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등학교는 새로 생긴 학교이기에 규율이 엄격했다.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을 가차 없이 퇴학시키거나 전학을 보내곤 했다. 그때 한 은사님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교감 선생님께 그렇게 교육이 쉬우면 누군들 교육을 못 하겠느냐고 퇴학이나 전학을 반대하셨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은사님은 전공교육 못지않게 아직도 닮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인생에서 이런 스승들을 만난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고, 이분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내 모습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교육현장서 스승이 사라진 시대
교육본질 상실한 입시위주 교육
지식교육은 인공지능에 맡기고
전인교육하는 스승이 돌아와야

스승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걸핏하면 선생님을 고발하고  조롱하며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교사들은 학생 인권 보호 때문에 엄하게 학생들을 교육하기보다는 이를 회피한다. 교장은 학교나 자신의 안위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교사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이를 묵과하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한다. 서이초등학교 사태를 통해 교사들이 얼마나 교육현장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교육에서 지식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에 교사는 지식 전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식 전수의 효율성에서는 사교육 현장의 강사들이 더 뛰어나다. 대학입시만 생각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을 더 신뢰하기에 일타 강사들이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는 교육이 아니라 지식 전수의 효율적 제조업과 같은 것이다.

교사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자신을 지식 전수 노동자로 자리매김하며 전교조 같은 노동자단체를 만들어 교사의 노동자권익만 주장한다. 슬기로운 지혜, 어진 인성, 건강한 몸을 키우는 지덕체(智德體)의 전인교육은 사라지고 대학입시를 위한 기능적 지식 전수의 효율성만 남았다. 그래서 공교육 현장에서 사라진 엄격한 훈육을 학부모들이 사교육 학원에다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명문 사학 게이오대학은 아직도 교명을 게이오의숙(慶應義塾)이라고 한다. 의숙은 공익을 위해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기관이라는 뜻도 있지만, 함께 먹고 자는 기숙이라는 의미도 있다. 근대화 시기 일본은 다양한 사숙(私塾)을 통해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살면서 교육을 했다. 심지어 스승의 사모님이 식사와 빨래까지 해주면서 제자들을 자식 못지않게 교육했다. 아직도 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게이오대학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교육(education)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은 객관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는(educe)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은 일방적 지식전수가 아니라 학생의 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다. 창의력, 소통능력, 협업능력, 공감 능력 등의 역량 강화가 지식 전수보다 중요하다. 이런 능력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초중고에서 영어, 수학, 컴퓨터 과목을 디지털 교과서로 가르친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학생 맞춤형 지식을 더 잘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는 IBM 왓슨이 개발한 질 왓슨이라는 인공지능 교육 조교를 컴퓨터 수업에 활용한다.

인공지능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 교사의 역할은 없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 지식 전달자로서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전인격으로 키워내는 스승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지식은 인공지능이 학생들에게 개인 맞춤형 상호작용으로 가르치고 교사는 이를 도와주는 코치나 촉진자의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 단순 지식은 인터넷 강의나 인공지능을 통해 배우고, 교실에서는 문제해결이나 토론과 같은 능동학습을 통해 생각의 근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사교육 시장의 효율적 지식 전수는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명문 대학 졸업장도 효용성이 희석될 것이다. 이제 지식은 다양한 곳에서 얻을 수 있고 대학 캠퍼스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 만점 의대생 사건은 충격적이다. 이는 교육의 참된 가치를 잊고 지식만을 절대시한 데서 빚어진 현상이다. 이제 교사는 전인 교육을 지향하며 제대로 된 인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스승으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한다. AI 시대를 맞아 그동안 공교육 현장에서 잊혀졌던 스승의 귀환이 간절하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