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정치학자/50대 총리 노재봉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기 싫어하는 소신파/“이론도취 오만” 비판도
23년간 재직하던 서울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6공권부(대통령정치특보·비서실장) 진입 2년만에 내각총수 자리에 오른 노재봉 총리(서리)는 확실히 새 인물이다.
매스컴은 노태우 대통령이 50대의 강성인물을 발탁,다목적용으로 「키우고 있다」고 전하고 있지만 인간 노재봉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는 과연 노대통령을 대신해 정책을 과단성있게 밀고 나갈만한 사람인가,양김씨를 대체할 후계자그룹의 선두주자라고 하는데 실상은 어떤가,무엇이 그를 갑자기 부상하게 했는가 등등… 궁금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문제의 해답은 우선 그가 가장 오랜기간 몸담아온 정치학자 노재봉의 생각과 행적에서부터 출발해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정치학자이면서 늘 정치현상에 가까이 접근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의 이론은 비교적 정치현실에 바탕을 둔 분석과 대안추구에 쏠리는 편이었다.
그는 평소 『정치학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드러난 결과를 누가 가장 이상적으로 설명하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점』이라고 비판한다.
그만큼 그는 현실을 중시하고 역사적 사건도 현실의 편에서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예가 88년 6월 남한강 수련원에서 있었던 민정당세미나 강론이었다.
그는 그때 광주사태를 『80년 당시 김대중씨가 당권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수법」으로 문제를 일으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이 말때문에 야당과 재야·학생들로부터 거친 항의와 협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이런 점을 노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소신이 강한 편이나 사물을 판단하는데 있어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철저히 배격한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속물적 감상주의를 내놓고 경계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샀고 학계를 떠나게된 계기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성격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앞세워 내세우지 않는 노대통령 성격과 역설적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또 판단을 주저하지 않는 강한 성격으로 인해 그는 고수답지않게 카리스마적이라는 얘기도 듣는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고 나서 그의 이런 성격은 더욱 두드러져 자신의 사고틀에 맞추어 비서실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비서실장시절 비서관 전체회의를 도입하고 거의 매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비서관들과 쟁점사항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토론의 끝은 항상 자신이 명쾌한 이론을 펴 비서관들을 설득시키는 쪽으로 마무리지었다.
정치사상적으로는 우리 사회구조가 경공업중심의 근대화 초기과정을 넘어서 도시산업사회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근대화 초기과정에서의 권위주의적 권력행사방식도 사회의 새로운 구조적 변화에 맞춰 민주적 방향으로 정비돼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내각제 미련 안버려
그는 사회 각 분야가 원자화 돼가는 상황에서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대체수단으로서의 새로운 기본틀로 민주화를 제시했다.
또 새로운 정치제제로는 내각제를 주창했고 실제 3당통합의 정계개편과정에서 내각제를 관철시키려 무진 애를 썼고 지금은 내각제에 미련을 버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는 소신이 강한만큼 자기이론에 도취하는 오만한 사람이라는 비판도 종종 듣는다.
그의 강한 소신은 대언론관에서도 나타난다. 언론이 지난 1년 민자당내의 계파싸움을 보도하는데 대해 『언론의 장난이 심하다. 이건 횡포다』고 거침없이 퍼부었다.
정치흐름의 곁가지인 계파간 이해갈등을 마치 정치의 본류인양 국민을 오도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내각제 각서파동이 났을 때 『그같은 각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등소평 아들이 방한했을 때 이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는냐』는 것이 정치인 노재봉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노총리는 팔방미인이다. 학자로서,관리로서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을 많이 갖고 있다.
그이 노래솜씨는 오현명 이후 최고의 바리톤가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고 가곡 「떠나가는 배」를 부를땐 좌중을 압도한다. 파이프 담배를 물고 피아노도 치며 춤솜씨도 일품이다.
서도솜씨 역시 개인전을 열 수준이다.
승부욕도 강해 골프나 바둑을 하면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훤히 보인다.
이같은 그의 성격과 장점은 부친이 방직회사를 창업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정적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노래·춤솜씨 뛰어나
또 그는 우리나라 국제정치학의 태두인 이용희 전 통일원장관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학문에 있어서 그의 저서 『시민자유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 이념과 민족주의적 접근방법은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그의 개인적 특성으로 미뤄보면 앞으로 내각은 원칙위에서 상당한 속도와 힘이 붙은 추진력을 갖고 운영될 것이 분명하다.<이규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