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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협치의 출발점이 새 총리 인선…먼저 야당과 대화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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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조셉 나이 석좌교수와 대담을 진행했을 때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박영선 전 의원.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조셉 나이 석좌교수와 대담을 진행했을 때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박영선 전 의원. [중앙포토]

‘박영선 총리-양정철 실장’ 설에 정치권 술렁

대야 채널 가동해 협치의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어제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로 박영선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서실장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유력하게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와 정치권이 크게 술렁댔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두 사람의 발탁을 고려한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해설도 있었다. 파장이 커지자 몇 시간 뒤 대통령실은 공지문을 통해 해당 보도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이 공식 부인하긴 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전언에 따르면 일부 대통령실 인사는 해당 보도를 시인했다고 하니 전혀 근거 없는 얘긴 아니었던 것 같다. 대통령실이 협치 총리로 야당 출신 인사를 고려하는 것 자체야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꽉 막힌 여소야대 정국을 풀기 위해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모든 일엔 수순이 중요하다. 일의 선후가 뒤바뀌면 훌륭한 정책도 결국 패착이 되고 만다.

여권이 협치를 할 상대는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렇다면 협치 총리 인선은 당연히 민주당과 먼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민주당은 ‘박 총리-양 실장’ 보도에 대해 뜬금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야당 분열 공작이란 의심도 나왔다. 사전에 민주당과 아무 소통이 없었다는 얘기다. 협치 총리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간 보기’를 할 사안이 아니다. 우선 대통령실·국민의힘이 민주당과 공식 대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뒤 각자의 요구들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어디까지 서로 수용이 가능한지 허심탄회하게 따져보는 게 먼저다. 필요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담도 열어야 한다. 오랜 대화 끝에 어느 수준까지 협치를 할 수 있는지 시스템의 윤곽이 그려지면, 그때 이를 추진하기 최적일 협치 총리의 인선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처럼 대통령실이 일방적으로 인선부터 서두르면 야당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협치 총리를 발탁하려면 여야의 지지층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인사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박 총리-양 실장’ 보도 직후 보수층에선 강력히 반발하는 기류다. 친윤계 핵심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조차 “당의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는 인사는 검토조차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박 전 의원이나 양 전 원장 모두 윤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지만 개인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를 혼동해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는 협치 총리를 찾는다면 대상자의 풀을 크게 넓히고 다양한 조언과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박 총리-양 실장’ 카드가 언론에 흘러나온 배경도 수상쩍다. 대통령실 공조직은 전부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어서 비선 라인이 가동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중대 사안이 어떻게 주요 참모들을 건너뛰고 보도됐는지 철저한 내부 점검이 필요하다.